프랑스 외교관 탈레랑의 명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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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모리스 드 탈레랑 페리고(Charles Maurice de Talleyrand-Périgord)은 프랑스 대혁명 시기와 나폴레옹 시대, 그리고 그 후의 왕정복고기까지, 격동의 시대마다 중책을 맡았던 뛰어난 외교관이다.

특히 그는 젊은 장교 나폴레옹을 정계로 이끄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나중에 나폴레옹이 자신의 군사적 재능을 과신할 때,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결과적으로는 나폴레옹과 결별한다. 그리고 나폴레옹이 몰락할 때 외교력을 발휘하여 프랑스를 패전국 취급을 받는 사태에서 구해내는 수완을 발휘한다.

말년에는 네덜란드를 견제하기 위해 카톨릭 세력을 몰래 지원하여 벨기에의 독립을 부추기는 등, 직접 개입보다 간접 개입을 통해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대 외교의 토대를 닦은 인물이기도 하다.


탈레랑의 명언들을 살펴보며 무엇이 한국의 문제인지 되짚어보자








I am more afraid of an army of 100 sheep led by a lion than an army of 100 lions led by a sheep
사자가 이끄는 100마리의 양떼가 양이 이끄는 100마리의 사자들보다 더 무섭다






The art of statesmanship is to foresee the inevitable and to expedite its occurrence.
정치 기술의 핵심은 피할 수 없는 사태를 예측하고 그것을 앞당기는 것이다. (은폐하려 하지 말고 신속하게 대처하라는 소리)





Speech was given to man to disguise his thoughts.
연설의 목적은 속내를 숨기기 위함이다.





A diplomat who says “yes” means “maybe", a diplomat who says “maybe" means “no”, and a diplomat who says “no” is no diplomat.
외교관이 '예"라고 말하면 "아마도"라는 의미다. 외교관이 "아마도"라고 말하면 "아니다"는 의미다. "아니다"라고 말하는 외교관은 외교관 실격이다.
 






The art of putting the right men in the right places is first in the science of government; but that of finding places for the discontented is the most difficult.
인재를 알맞은 자리에 등용하는 것은 국정 운영의 기초이다. 하지만 불만을 가진 놈에게 맞는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 가장 어렵다.





They had learned nothing and forgotten nothing.
배운 게 없는 새끼들은 잊어먹을 것도 없다.





To succeed in the world, it is much more necessary to possess the penetration to discern who is a fool, than to discover who is a clever man.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호구인지 간파하는 능력이지 누가 똑똑한지 알아보는 안목이 아니다.





Too much sensibility creates unhappiness and too much insensibility creates crime.
너무 예민한 사람은 행복을 느끼지 못하지만 공감 능력이 없는 놈은 범죄자가 된다







Above all, not too much zeal
가장 중요한 것은 광기를 피하는 것이다.












탈레랑은 프랑스혁명 직후, 로베스피에르가 실시한 공포정치를 피해 영국을 거쳐 미국으로까지 도망 친 적이 있었다.
그때의 위험천만했던 체험은 탈레랑의 성격에 두가지 면에서 영향을 미쳤다.
첫째, 그는 인생을 사랑하고 돈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는 뇌물을 거부하지 않았고 여자들과도 염문을 뿌렸다.
둘째, 그는 광기를 혐오하게 되었다. 로베스피에르를 통해 광기가 얼마나 위험한지 몸소 체험한 그는 정치적 타협과 외교를 통해 번영을 지켜야 한다는 굳은 신념을 가졌다. 그것이 그가 나폴레옹과 손을 잡았고 또 나중에 나폴레옹이 전 유럽에서 전쟁을 벌이자 저버린 이유이기도 했다.


탈레랑이 항상 인생을 즐기려고 노력했던 배경에는 끔찍했던 공포정치 체험이 숨어있었다. 그래서 탈레랑은 이렇게 말한 것이다.


Whoever did not live in the years neighboring 1789 does not know what the pleasure of living means.
1789년 직후의 시절을 살아보지 못한 사람은 살아있다는 기쁨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게이들도 훗날 문재앙 시절을 되돌아보면서 탈레랑과 같은 말을 하기 바란다.
Whoever did not live in the years of Moon Jae-in does not know what the pleasure of living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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