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0년 미국을 방문한 일본인의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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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츠 가이슈(1823-1899)는 도쿠가와 막부 시절, 하급 무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난학(네덜란드인들이 전파한 학문)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독학으로 네덜란드어를 익혔고 네덜란드에서 들여온 책들을 읽으며 지식을 키웠다.

가츠가 가장 관심을 가졌던 분야는 선박 기술이었다. 그렇게 유럽의 선박 서적을 읽다 보니 30대 무렵에는 상당한 지식을 쌓게 되었고 막부에서도 인정하는 선박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막부는 그를 나가사키로 보내 유럽인들과 계속 교류하면서 선박 기술을 익히도록 했다. 

가츠가 상대하던 유럽의 선박 기술자들은 해군 출신들이었다. 그들과 교류하면서 가츠는 해군에 대한 지식도 쌓게 되었다. 하지만 군사학에 대한 지식보다도 그는 유럽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네덜란드가 서양에서 가장 큰 국가가 아니며 영국과 미국이라는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가 영어 공부에 박차를 가하게 된 이유이다.


막부에서는 뛰어난 영어 실력을 갖추게 된 가츠를 불러 1860년,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워싱턴DC로 가는 막부 사절단에 동행하도록 하였다. 이것이 일본 사상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한 사절단이다. 태평양을 접했고, 미국의 문명을 목격한 가츠는 미국의 거대함에 감탄하였다. 그는 영어 회화 실력을 살려 미국 각계의 인사들과 대화를 하며 자유로운 의견 교환을 가졌다. 미국에서 약 2달 정도 머물고 일본에 귀국한 가츠는 미국이 어떠한 나라냐고 묻는 당시의 쇼군 도쿠가와 이에모치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당시 가츠의 대답은 기록으로 남겨져 지금까지 전해내려온다.




左様、少し眼につきましたのは、アメリカでは、政府でも民間でも、およそ人の上に立つものは、みなその地位相応に怜悧で御座います。この点ばかりは、全く我国と反対のように思いまする)
"소인의 눈에 띈 점은, 미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정부에서도 민간에서도, 지위가 높은 자들은 모두 그 지위에 걸맞는 지식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 점에서 우리나라와는 정반대라고 생각합니다."




대놓고 자기들을 디스하는 꼴이니 당연히 이에모치 주변의 중신들은 격노했다. 하지만 이에모치는 가츠의 의견에 깊게 공감했고 가츠를 지켜주었다. 이에모치는 가츠를 매우 신임했는데 이러한 은덕을 입었던 가츠는 쇼군의 충신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머무는 동안, 사절단 대표가 자기 가문의 깃발을 걸어놓자 가츠는 격노하면서 도쿠가와 가문의 깃발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개혁 군주였던 이에모치는 건강이 좋지 못했다. 그는 가츠를 해군사관학교 교장으로 임명하였으나 1866년에 세상을 떠났다.

가츠는 끝까지 도쿠가와 가문에 대한 충성을 지켰고 메이지 유신 이후에는 낙향하여 은둔하며 지냈다. 하지만 메이지 정부에서는 가츠를 불러들여 해군 업무를 총괄하도록 했다. 그는 평생을 일본의 근대화에 바쳤고 1899년에 세상을 떠났다.








"지위가 높은 자는 지위에 걸맞는 지식을 갖추고 있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를 이처럼 명확하게 설명하는 말을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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