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안경과 인간본성을 고찰해보자.

<이 똥글을 읽기 전 분위기 조성을 위해 이 브금을 켜자. 암거나 골라서 꼴리는대로 들어라. 싫음 듣지마 시발>






*이 글은 전에 같은 제목으로 올린글이 새벽 3시인가 4시인가에 올라가서 묻힌감이 있어서, 일부 수정을 가한 재탕재업임을 밝히는 바이다.








거꾸로 안경이라는 물건이 있다

사방이 거꾸로 보이는 안경이지.  위 아래가 뒤집힐 뿐 아니라 좌 우까지 모두 역전되어 보이는 말 그대로 사방이 거꾸로 보이는 안경이다.




이 안경을 보고 이런 생각을 떠올리는 게이가 있을 지 모른다.


뇌는 유연하다고 하던데..

사람이...막 태어난 아기가 이걸 태어나자 마자 쓰고 그렇게 계속 살아간다면

뇌가 적응을 해 버려서, 

거꾸로 보이는 것들이 다시 완전히 뒤집혀서, 그냥 세상이 똑바로 교정되어 인식될까?
아니면 지금의 우리가 거꾸로안경을 그냥 썼을 때와 같은 역전된 세상을 보면서 평생 살아갈까?
 


이 질문을 파헤쳐 보자.
 
 











 
NATURE VS NURTURE
 

 
20세기 초반에는 그 보다 더욱 과거로부터 계속 이어진 '본성과 양육'이라는 논쟁으로 과학계와 철학계 등 여러 학계를 비롯 여러 사람들을 몹시 괴롭히고 있던 시기여따.
 
1600년대에 유럽은 종교개혁이란걸 겪으면서 종교와 거대한 정치운동을 벌이게 됐는데, 그 과정에서 가톨릭계 등의 종교계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은 서서히 약화되고 개인의 권리와 책임이 강조되면서 자연스레 경험주의라는 사조가 생기며 이걸 바탕으로 과학이란 학문이 철학과 종교로부터 독립학문으로 떨어져 등장하게 되며 번성을 하기 시작했지. 그 시기에 유명과학자들이 막 쏟아져 나왔는데, 사람들은 마치 오늘날에 영화를 보러가거나 콘서트장에 음악공연 보러가듯 과학에 대한 강연을 들으러 가곤 했다고 한다....
 
그 시대에 유명 과학자이던 뉴턴은 태양빛이 프리즘을 통과함으로써 여러 색깔의 빛으로 분해되고, 다른 프리즘을 통해 다시 합쳐져서 백광이 된다는걸 보여줬고 화학자 겸 물리학자이던 로버트 보일이 화합물이란게 기본적 부분들(오늘날의 개념으로 분자와 원자 같은)의 결합에서 생성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자..그때...이 두 사람에게 큰 영향을 받은 철학자 한명이 있었다.
 
 
 
 

 
그는 바로 존 로크였다
 


존로크는 뉴턴이 빛을 분해하고 합성했던 것 처럼, 마음을 분해하고 다시 합성해서 전체의식을 만들어볼 수 있겠다는 상상을 했었다.
그러면서 보일의 주장처럼 사람의 마음에 있는 어떤 특성, 복합적 관념(이데아)같은 것이 기본적 관념들의 결합에서 생성되고, 이 기본적 관념은 다름아닌 감각기관들을 통해 수동적으로 획득이 되는거라 여겼지.

  

쉬운말로 하면 기본관념인 "붉다, 달다" 같은 것들은 시각과 미각을 통해 얻어지며, 복합관념인 "잘 익은 빨간 사과" 같은것은 이런 단순관념들의 연합에 의해 생긴다라는 아이디어 였다. 존로크는 인간의 마음이 이런식으로 구성된다고 여겼음..
 
한마디로 존로크가 펼쳤던 주장은
 
"모든 지식, 마음은 오직 경험에서 기인한다" 라는 것이다. 

후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썼었던 비유 "빈서판"(백지, 암것도 안써있는 판떼기, 타뷸라 라사, tabula rasa)을 자기가 차용해서...
갖 태어난 아기는 나중에 무언가가 쓰여지게 될 빈서판에 일종이라고 여겼다.

 
"Let us then suppose the mind to be, as we say, white paper void of all characters, without any ideas: How comes it to be furnished?...To this I answer, in one word, from EXPERIENCE."
"마음이, 말하자면, 아무 관념도 없고 아무런 특징도 가지고 있지 않은 백지라고 가정해 보자. 어떻게 마음이 장식되는 것인가?...이 물음에 한 단어로 답한다면 그것은 경험이다."
 
 
이게 존로크의 경험론이다. 
 
이 존로크의 경험론은 당시 종교억압과 귀족정치에 억압받던 사람들을 크게 흔들어놓아서...
 
고귀한 혈통만 물려 받아 다스리는 귀족정치, 즉 혈통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니까, 지식을 습득하고, 성공하고, 리더십을 발휘하고 하는 능력에서 모두 동일하며 노력과 학습에 의해 평민들도 사회계급의 한계와 장해를 모두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씨발점이 되었다.

그리고 또 존로크는 자신의 사상을 바탕으로, 출생성분에 관계없이 모든 아동들은 좋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이런 경험론은 미국까지 건너가서 나중에 토마스 제퍼슨이 독립선언문을 쓸때 존로크가 했던 말을 그대로 복붙하는 것으로 까지 이어졌다.

 
 
이런 존로크의 빈서판썰은 영향력은 이런 사상적인 것 뿐만 아니라... 그대로 인간에 대해 생각해보는 학계로 까지 그 영향력이 뻗어있었다
 
 

거꾸로 안경 이야기하는데 왠 존로크가 튀어나오는가..
 
왜냐면 이 질문은 사실 이 본성과 양육논쟁과 맞닿아 있는 의문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유산들을 만지고 해부하다가 보면, 현재의 새로운 논쟁이라는 것은 고작 과거 것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라는 '데자뷰 효과'를 가끔 느끼곤 한다.
 
 
뇌는 타고나는 것이기 때문에 갖 태어난 아기에게 거꾸로 안경을 씌우고 평생을 살게 해주면, 아무리 그 안경과 적응을 잘 해도 거꾸로안경과 함께 세상이 뒤집혀 보일까? 단지 뒤집힌 세상에 적응을 잘 한것일까? 아니면 뇌는 무엇이든 유연하게 배우고 적응을 하는 후천적으로 배워 변형을 막 유연히 하는 기관이니..결국 그 아기와 거꾸로안경과 함께한 세상은 똑바른 세상으로 보이게 될까?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20세기 초반은 바로 그런 굴곡에 여전히 시달리던 시기였다. 그 영향은 본성이냐 양육이냐, 선천성이냐 후천성이냐 하는 질문으로 남아 여전히 당시 과학계를 괴롭히고 있었지.
 


 
 
 
  
1940년대에 칼 래슐리라는 심리학자가 있었음.
 
 
 
 
이 사람은 그의 가장 유명한 제자 도날드 헵(신경 가소성과, 신경계에 학습의 주요 원리인 LTP 관련하여 선빵치는 연구를 했던 학자)이라는 사람과 다트머스대학에서 아주 신랄한 논쟁을 펼친적이 있다.
 
질문은 이것이었다

"뇌는 빈서판 같은것이라 막 유연히 변형가능할까? 아니면 이미 여러가지 제약을 갖고 태어냐며, 그 갖고 있는 구조에 따라 모든게 결정되는걸까?"
 
당시는 위의 존 로크로부터 비롯된 빈서판썰이 거의 20여년동안 지배적인 학설로 군림하던 때였고..이 칼 래슐리는 애초부터 이 썰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심지어 당시 학계를 휘잡고 있던, 가장 급진적 빈서판 이론가였던 행동주의자 존 왓슨의 절친이었지(존왓슨은 건강하고 멀쩡한 아기 열둘과 이 아이들을 내 방식대로 키울 수 있는 세상을 준다면 이 아이들을 골라서 내가 원하는 전문가, 의사, 변호사로 키울 수 있고 거지, 도둑으로 키울 수도 있다. 아이의 재능, 취향, 인종은 전혀 상관없다라는 극단적 주장을 했던걸로 유명한 사람) 
 
 
 
아무튼 칼래슐리는 최초로 지능이나 기억과 관계된 동물의 뇌 메커니즘을 직접적으로 뜯어가며 정량적으로 연구했던 사람들 중 하나인데..
이 사람을 가장 유명하게 만든 논문이 'In search of the engram', '기억흔적을 찾아서' 라는 것이다.(참고로 노벨상을 수상한 신경생물학자 에릭칸델의 유명한 자서전 "기억을 찾아서"는 칼 래슐리의 이 논문을 오마주한 제목이다. 칼래슐리의 이 논문에 대해 자세하게 나가면 삼천포로 빠지니 건너뛰고 생략한다)
 
 
 
 
래슐리는 쥐의 대뇌피질에 손상을 입히는데...그 방법이...기발하기 짝이 없었음..

아주 옛날에 유럽을 휩쓸던 골상학phrenology 라는 사이비학문이 있었는데. 당시 나폴레옹 전속 과학자이던 플로랑스는 나폴레옹으로부터 이 골상학이라는 놈을 한번 검증해보라는 명령을 받았고, 그는 연구끝애 이 골상학을 사이비라고 결론내며 박살내버렸다. 그때 그 플로랑스가 썼던 테크닉인 실험적절제술(experimental ablation methods)을 이 칼래슐리가 재발굴하여, 이걸 아주 새롭게 정교화시켜서 그 누구도 생각치 못한 발상의 아주 기발한 실험을 계획한다...

그것은 바로...당시 널리 알려져 있던 '특정 기억심상(engram)'이 특정 피질 구역에 위치하는지를 검증하려 했던 것이다..
 

즉, 쥐의 대뇌 피질을 아주 조심스레 손상을 입힌 뒤에 손상을 입기 전과 후의 행동을 아주 정량적이고 계량화시켜서 연구를 한것이지.
 
포인트는 이것이다


제거한 피질 조직의 양이 학습과 기억에 영향을 미치는가
제거한 피질의 부위, 위치가 학습과 기억에 영향을 미치는가?


 
실험 후에 래슐리는 쥐의 기억, 학습 능력의 상실이 위치가 아니라 제거된 피질의 양에 좌우된다고 아주 확신하게 되었다.
그니까 특정 손상병변 위치때문에 그 능력의 손실이 일어난게 아니라, 단순히 손상된 양에 좌우된다고 생각했던거다.
 
이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래슐리는 그 유명한 mass action법칙(뇌는 전체적으로 작용하여 뇌의 기능이 결정된다), 그리고 equipotentiality법칙(뇌의 모든 영역은 어떤 일이든 수행할 수 있으며 부위별로 특화되어 있지 않다)라는걸 최초로 검증해서 주장하게 됐다. 
 
뇌에는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라는 거지.
이 아이디어에 근거하면, 만일 갖 태어난 아기에게 거꾸로 보이는 안경을 씌워 평생을 보내게 하면 결국 그 아기는 세상을 똑바로 인식하는 방향으로 뇌가 발달하게 될것이란 얘기가 된다.
 
 
 
 
 
 
동 시대에 래슐리의 equipotentiality법칙을 아주 제대로 뒷받침하는 주장을 펼쳤던 또다른 유명학자는 신경계 발달을 연구하던 당대 최고의 동물학자 폴 바이스였다.
 
폴 바이스는 [도룡뇽과]에 속하는 동물인 뉴트(newt)에 다리를 이식하여, 그 다리에 특화된 신경이 자라날 것인지, 아니면 임의적으로 랜덤하게 마구마구 자라난 신경이 쓰임새에 따라 결국 다리의 뉴런으로 적응을 할 것인지의 여부를 직접 검증해봤다.
 
결과는 뉴트에게 이식된 도룡뇽 다리가 인접한 다른다리와 아주 유기적이고도 조화롭게 움직임을 익히는 모습을 발견했지..
이를 바탕으로 폴바이스는 "function preceding form" "기능이 형태에 선행한다" 라는 당시에는 생리학계에서 아주 유명했던 명언을 남겼다. 즉, 시냅스 연결의 증가가 완전히 임의적이고 랜덤하게 분산된 방식으로 자라나는 후속 접촉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보는 견해였지.
 
이런 결과들을 바탕으로 해서, 그 당시 학계에서는 뉴런에서 뉴런으로 이어지는 신경계에는 그냥 사전에 짜인 체계가 없고 "어떤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어떤일이든 일어날 수 있고, 기능이 뇌와 신경계의 생김새, 형태보다 먼저 선행하고, 기능이 결국 형태를 조성하니......
 
이 아이디어를 근거로 생각해보면..
 
갓 태어난 아기에게 태어나자마자 거꾸로 안경을 씌워서 평생을 그렇게 살게 해주면..결국 그 아이의 뇌는 눈으로 들어오는 뒤집어진 시각자극을 뒤집어지지 않은 형태의 세상으로 인식하는 그런 기능을 갖는 형태로 뇌가 교정하는 방향으로 발달하게 될 것이란 얘기다.
 
 
 
 
 
 
 
 
 
 
 
 







뇌가 배울 수 있는건 
따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칼래슐리의 실험은 오늘날에 잘못된것이라고 익히 알려져있다.(하지만 그는 업적이 뛰어난 여전히 위대한 학자에 속한다) 그리고 래슐리는 자신의 제자 도날드 헵에게 박살이 났다.(이 얘기는 너무 복잡하고 불필요하므로 생략한다)
 
 
 
 
폴 바이스의 경우에는 로저 스페리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래슐리와 마찬가지로 폴바이스도 자신의 제자 로져스페리에게 깨지게 된다.(스승을 깨버리는 학생들이 보통 성공하더라 나중에 이 양반은 칼텍 심리학과에 교수로 재직하면서 여러 동물을 이용하여 신경연결을 뒤바꿔치기 하는 역사적인 연구를 수행했는데, 그 실험실을 거쳐간 대학원생 제자 한명이 참을 수 없는 호기심 때문에, 로저스페리에게 배운 이 실험내용들과 테크닉을 바탕으로, 동물이 아닌 사람에게 수행했던 실험이 있는데 엄청난 것이 발견되버린다. 이 제자 덕분에 로저스페리는 노벨생리학상을 탄다. 제자는 그 노벨상을 못받았지만, 오늘날 학자로서 성공한 삶을 살고있고 그가 바로 "Cognitive Neuroscience, 인지신경과학"이라는 말을 처음 만든 인지신경과학의 창시자 마이클가자니가 라는 사람이다.) 
 
 

아무튼 

바이스는 기능적 활동(예컨대, 어떤 신경이 계속 발역할을 하는 구조물과 붙어있다면)이 신경회로의 형성에 어떤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여 결국 그 신경의 발달(발 기능으로 특화된 신경계로 형성)로 이루어진다는 견해였는데..스페리는 이에 대해 아주 회의적이었다.

 
예컨대 각종 다양한 신경재건수술을 받은 환자는 수술후에도 왜 몇년간 아무런 차도가 없을까 하는 여러 다양한 사례를 통해..스페리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지.
 
그래서 자신의 스승에 주장이 맞는지 안맞는지 면밀히 따져보는 연구를 수행하기로 마음 먹고, 신경연결의 변화가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찰하는 방식으로 쥐, 닭, 양서류, 물고기 등 온갖 동물에게 각종 기발한 실험을 했었다.
 
예를들어 막 태어난 쥐의 양 뒷발에서 발을 구부리는 굴근과 발을 펴는 신근 신경연결을 서로 바꿔치기 해서..발 관절 움직임이 뒤바뀌도록 해놓고..폴 바이스의 주장처럼..얘가 살아가면서 결국 그 신경연결이 쥐가 발을 제대로 움직이는 법을 학습하여 형태가 바뀌는지 알아보았지..
 
결과는 어떤 훈련을 거쳐도..쥐는 발을 제대로 움직이는게 불가능했다.
 
예를들어 쥐가 사다리를 올라가려 할 때..다리를 올려야 하는 상황에선 내리고,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는 올리려고 했지.
결국 운동신경은 상호교환이 불가능한것으로 결론지어졌다.
 
 
또다른 실험에선 다른 감각계를 조사 했는데 쥐의 양쪽 발의 피부 신경을 교차시켜놓고 키워봤다. 이번에도 쥐는 오른쪽 다리에 자극을 주면 왼다리를 들어올리고, 오른다리에 통증을 주면 왼다리를 들어 핥았다. 운동계 감각계 모두 바이스가 주장했던 것 처럼 무지막지하게 유연한 가소성이 없었다. 
 
이번에는 개구리의 눈을 위 아래로 뒤집어놓고 키웠는데...이 상태로 아무리 몇달을 보내고 훈련을 거듭하여도..개구리가 파리를 보면 반대방향으로 혀를 뻗었다.
 
신경계에는 일종에 특정성(specificity)이 존재했던거다. 이는 절대 변경할 수도 없고 새롭게 적응시킬 수도 없었다.
 
또, 금붕어의 망막 일부를 잘라내어 신경이 재생될 때 눈으로부터 정보를 받는 중뇌(mesencephalon)의 시개(tectum)에서 어느 부분에 신경이 어떻게 생성되는지를 아주 면밀히 관찰해본 결과..신경 세포들이 아주 특정한 방식, 즉 각자 세포가 정해진 고정된 방식으로만 생성되는걸 확인할 수 있었다. 망막 뒤쪽에서 생성된 신경세포는 오직 시개 앞쪽으로만 자랐고, 망막의 앞쪽에 생성된 신경세포는 오직 시개 뒤쪽으로만 자라났다.
 
처음 자라나는 위치에 관계없이 그 세포가 날때부터 정해진 위치를 향해 나아가며 생성됐던 거지..
 
이를 토대로 스페리는 "중앙 신경계는 연결이 끊어지고 이식되거나 외과적 수술에 의해 거칠게 나뉘거나 뒤섞이면 언제나 재생을 통해 정상적인 기능을 회복하며 재학습을 통해 기능을 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라는 결론을 끝으로 냈다.
 
폴바이스는 자신의 실험 대상으로 뉴트라는 도룡뇽과에 속하는 뉴트라는 동물만 사용했던게 큰 실수였던거다... 그런식의 기능재생은 오직 도룡뇽계통 동물에게만 적용되는 얘기였다.
 

나중에 전자현미경이 등장하면서..신경성장을 직접 눈으로 관찰할 수 있게 되었는데...신경 끄트머리에서 끊임없이 몇가닥의 미세섬유가 촉수처럼 뻗어나와 사방을 더듬어가며 어느방향으로 성장할지 간을 보면서 늘었다 줄었다 하는 모습이 확인되기도 했다. 이 경우 스페리는 어떤 화학적 요소와 미리 정해진 유전자코드가 세포의 성장 경로를 설정할 지 결정한다고 주장했지. 이런 연구들을 바탕으로 로져 스페리가 현대 신경과학의 중추로서 오늘날에도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신경특정성(neurospecificity)이란 개념의 도달에 대한 기초작업을 해냈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 경우 첫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생각해보면
애기에게 거꾸로 안경을 씌워서 평생을 살게 한다 하더라도, 죽었다 깨도, 세상은 그 아기에게 결국 뒤집혀 보일 것이란 얘기다.
적응을 잘 해도 결국 뒤집어진 상에 적응을 한 것이지 그 세상이 뒤집어져서 보인단건 변함이 없을 것이란 것...
 
 
 
 
 
 




 
 
 
 
 
 
밑그림은 유전자가 그리고, 
색칠은 경험이 한다.
 
 
 
스페리가 미국에서 막 신경발달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한참 다듬고 있던 그 시대 초반에...
 
 
 
영국에는 피터 말러라는 젊은 생물학자가 있었다.
이 사람은 야생에서 식물을 연구하던중에 우연찮게...똑같은 종의 새가 지역에 따라 다르게 노래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호기심을 느낀 피터 말러는 이걸 새의 '사투리'로 부르며 본격적으로 흰관참새라는 종의 새를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새가 갖 태어나서 생후30일에서 100일 사이의 짧은 시기에 감각이 특히 예민해져 이 결정적 시기 동안 다양한 소리를 받아들이고 열심히 배운다는 것을 발견했다.
 
혹시 새에게 다른 노래를 들려주면 그 새로운 노래를 부를 수 있는지 호기심이 생긴 피터말러는 갖 태어난 흰관참새 아기새를 여러그룹으로 격리시켜 원래살던 지방의 노래를 들려주거나 타지의 노래를 들려줬고..결과는 새들이 그냥 자기가 그때 들은 노래를 배워서 불렀다.
 
이 새가 부르는 노래는 그 새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던 거지.
 
 
이제 말러는 조금 다른 종의 참새가 부르는 노래도 이 흰관참새 아기들이 배울 수 있는지를 알아봤음..
그래서 그 아기새들이 있는 지역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다른 종의 참새가 부르는 노래를 들려줬다.
 
결과는 죽었다 깨도 그 다른종의 참새가 부르는 노래는 배울 수 없었다. 오직 같은 종의 새가 부르는 노래만 배울 수 있었던 거지.
 
결국 새가 부르는 노래는 어떤 노래를 듣고 자랐느냐에 달렸지만, 배울 수 있는 노래의 종류는 아주 제한적이었다.
 
무언가 뇌가 학습을 할 수 있고, 새로운것을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무엇을 학습할 수 있을지는 이미 신경학적으로 정해진 제약이 존재한다는 것 이다. 이 선천적 제약은 곧 빈서판론이 문제가 있었단 거지...
 

한마디로..이미 유전자라는 밑그림이 그려져 있고..그 밑그림에 어떤 색칠이 될지는 경험에서 온다거다. 콩나물이 자랄 수 있는 범위는 유전적으로 이미 정해져 있지만, 그 범위 안에서 그 콩나물의 성장 방향성은 토양과 영양, 기후가 영향을 미친다는, 오늘날에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논리지
 
 
 
 
 
 
 
 
 
 
당시 다른나라 스위스에는 또 닐스 카이 예르네라는 면역학자가 있었다.
그 시대 면역학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합의사항이 하나 있었는데.. 항체antibody의 형성은 외부물질인 항원antigen이 가르치는 역할을 맡은 학습과정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항원은 대게 단백질이나 다당류로 세포의 표면을 구성하는데 이 세포들은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기생충처럼 세균성일 수도 있고, 꽃가루나 달걀흰자처럼 비세균성일 수도 있으며, 이식된 장기나 조직에서 나왔거나 수혈된 혈액세포의 표면에 있던 단백질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예르네는 이 '합의사항'이란게 사실과 다를 수 있다며 당시 면역학계를 뒤집어서 흔들어버리는 주장을 꺼낸다.
 
바로, 항원이 생길때 특수하게 설계된 항체가 새로 형성되는것이 아니라, 사람의 신체가 살아가면서 갖게 될 모든 종류의 항체를 이미 갖고 태어난다고 했던것....
 
항원이란게 그저 이 선천적인 항체가 인식하거나 선택한 그런 분자에 지나지 않고, 학습같은 것은 없으며 단지 선택만 있을 뿐이고, 면역계는 애초부터 복잡하게 만들어진 것이며 시간이 지난다고 더 복잡해지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이 이론은 오늘날 항체반응과 클론선택설(clonal selection theory)로 알려진 이론의 토대가 되었다.  
 
항체의 대부분은 일치하는 외래 항원을 만나는 일이 없지만, 혹시라도 그런 항원을 만나면 항체가 활성화되고 수많은 클론을 만들어 칩입한 그 항원을 무력화시킨다는거다
 
예르네의 파격적인 주장은 면역계에서 멈추지 않고,
 
면역계가 이런 식이라면...뇌를 포함한 다른기관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이 사람이 썼던 논문 'Antibodies and Learning: Selection vs Instruction, 항체와 학습: 선택이냐 명령이냐' 에 따르면  뇌를 명령이 아니라 선택에 반응하는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목이 있다
 
면역계가 어떤 종류의 항체든 마구마구 만들어 낼 수 있는 열린 체계가 아니라 이미 갖고 있고 보유하고 있는 것에 대한 체계인 것처럼..
뇌 역시 무엇이든 마구마구 학습할 수 있는 열려 있는 덩어리가 아니란 거다. 그니까 경험에 의한 학습이라는 것이 이미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능력을 골라내 그때그때 당면한 문제에 대처하는 과정이라는 아주 놀라운 주장을 내놓은 거지.
 
그 내재된 능력이란, 다른 말로 하면 특정 종류의 학습에 특화되도록 유전적으로 결정된 신경망이란 것.
 
학습을 연구하는 분야에서 자주 등장하는 예가 하나 있는데... 바로... 뱀을 무서워하는 법을 학습하기는 쉽지만 꽃을 무서워하는 법을 학습하기란 아주 어렵다.

다른 예로 '자동차'라는 현대 문명사회의 산물인 인공물은 뇌에 이미 내재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뱀을 보고 깜짝 놀라 자동차문을 쾅 닫다가 손을 다쳤다고 쳐보면... 그 고통의 직접 유발인자인 자동차에 공포감이 조건화 되어 학습되는건 굉장히 어렵고, 그냥 뱀에 대한 공포가 존나 더 빠르게 학습된다. 뱀에 대한 공포는 이미 안류가 야생환경에서 살아오며 생존문제와 연결되어 자연적으로 내재된 채로 진화되었다는게 '준비된 학습'  이론이다.
 
앞서 위에서 본 흰관참새의 예처럼...경험에 의한 학습이라는 것은 뇌의 복잡성과 함께 이미 존재하는 능력을 그저 선택한다는 것이지... 하지만 다른 말로 이는 제약을 뜻하기도 한다. 내재된게 아니라면 그 능력이 존재할 수도 없단거지.
 










그래서 뭘까?

 
래슐리나 왓슨 바이스가 묘사하던 뇌는 특수화되지 않은, 그러니까 무엇이든 학습할 수 있는 무지막지한 가소성을 갖는 뇌였다.
그런 뇌라면 꽃향기를 좋아하는 것 처럼..달걀썩은 똥내도 좋아하도록 가르칠 수 있고, 거꾸로안경을 씌우고 평생을 살아온 아기는 그 안경과 함께 세상을 뒤집어지지 않은걸로 보이도록 뇌가 학습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닐스 예르네나 스페리는 이런 개념에 도전해서, 뇌는 원래가 특정한 방식에 따라 이미 유전적으로 결정되어 있으며 거의 정해진 상태로 이 세상에 도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의 논리는 이릁네면 위의 피터 말러같은 사람들의 연구들, 노래하는 새 연구를 완전히 설명하지는 못한다. 그냥 간단히.....말 그대로 밑그림은 유전자가 그리고, 색칠은 그 밑그림 안에서 경험이 칠한다
 
 
 
 
 
 
 
 
 
 
 



 

 
 
감각박탈, 선택적 양육
 
 
 
 
옛날에 William Molyneux라는 이름의 아일랜드 귀족출신 철학자가 있었다. 이 사람이 한번은...당시 유명 철학자던 존 로크에게 심심풀이 땅콩으로 편지를 한장 보내어 질문을 던졌는데..
그 내용은 지금 첫 질문과 약간 비슷한 내용의 것 이었다.
 
"장님으로 태어나서 정육면체와 구를 촉각으로 구분하는 것을 배우고 성장한 사람이 나중에 다시 시각을 회복하였을 때 둘을 시각적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요?
 
존로크의 대답은 물론 '불가능하다'였음.. 그 사람은 차이를 보는것을 학습한 적이 없었기 때문.

이건 후에 Molyneux's problem(몰리뉴의 문제)라고 불리며 철학에 논의되던 주요 사고실험 중 하나가 되었지..
 
갓 태어난 애기에게 거꾸로안경씌워 평생을 키우는 것은 실제로 사람에게 할 수는 없는 실험이다..
하지만 똑같진 않지만 비슷한 상황을 찾는것은 가능하다.
 
장님으로 태어났다가 다시 시각을 회복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말이지...
바로 백내장 환자들이다.


백내장은 수정체에 어떤 막이 생겨서 세상에 대한 시각자극이 그냥 분산된 빛으로만 경험되는 병이다.
 
과거에 백내장은 영원히 장님으로 평생을 살아야 했던 병이었지만..오늘날 의학기술발달로..외과적 수술을 통해 충분히 백내장을 제거할 수 있게 됐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이 백내장을 제거하여 갑자기 시력을 회복하였을 때..어떤일이 벌어질까?
 
결과는 환자들은 대상 오브젝트들(전경)을 배경자극과 따로 분리를 하여 구분할 수 있었으며, 색깔을 충분히 감각할 수 있었다.
이런 사실은 시지각의 이런 측면들이 생득적, 그러니까 타고나는 것이란 사실을 뜻하지.
 
그렇지만..로크가 말했던 것처럼...이 사람들은 촉감으로 친숙했던 대상을 눈으로 재인(recognition) 즉, 예전에 그 친숙했던 자극과 동일한 자극으로 알아챌 수 없었다.
 
 
 
정상인은 얼굴을 전체로써 지각하고 재인한다. 이걸 holistic processing이라 함.
예로, 얼굴 사진을 절반을 잘라서 다른 얼굴을 합성하거나 이목구비를 변경하여 합성한 사진을 제시하면 정상인은 거기서 그냥
다른 얼굴이라고 판단해버리지. 절반이 똑같은거라고 보지 않고 그냥 아예 전체적으로 다르게 보여버린다.
전체적인 조합이 주는 얼굴의 '인상'이란게 있다는거다.
 
 
그렇지만 유아기에 위에서 말한것처럼 시각경험이 박탈된 사람들은 정상인들이 놓치기 십상인 윗부분 절반이 똑같다고 아주 쉽게 재인해버린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얼굴을 전체적으로 처리하는 것을 학습하지 못했기 때문.
 

예를들어 40년동안 맹인으로 생활하다가 시각을 회복한 43세 남자는 사람의 얼굴을 독특한 세부자질(feature)로써 연합을 시킬 수는 있었지만(영희는 곱슬머리, 철수는 짝눈, 얘쁜이는 싸이클롭스 등) 전체적 얼굴을 즉각적으로 재인, 알아치리지는 못했다.
 
또한 이 사람은 몇가지 지각항등성(perceptual constancy)관련 기능들도 잘 수행하지 못했었지... 
예를들어..사람들이 자신에게서 점점 멀어져가면 그 사람들이 멀리 가는게 아니라 그냥 크기가 줄어드는 것 처럼 지각했다.
 
이런 사례들이 보여주는 것은...존로크의 썰과는 다르게...시각이라는게 '부분적으로는 타고나는 감각. 또 '부분적으로는 획득된 감각'즉, 타고나지 않고 배우는 것ㅇㅣ기도 하다라는 사실이다.
 
 
이제 가장 비슷한 실험을 한번 살펴보자.
이 실험은 사람에겐 할 수 없지만 실험동물에게는 가능하다.
 
태어날 때부터 특정 자극만 존재하는 환경에 인위적으로 양육하는 조금은 잔인한 실험 방법이 있는데 이런식의 실험설계를 두고 선택적 양육(selective rearing)이라고 한다.
 
 
 
 
  
 
Blakemore와 Cooper라는 사람이 1970년도에 했던 아주 유명한 실험이다.
그림과 같이 어린 고양이들을 수직, 혹은 수평선분밖에 없는 환경에서 나눠서 선택적으로 양육을 시켰는데...
이 고양이들은 태어나자마자 2주까지는 암실에서 살았으며, 그 후에는 저 위의 그림처럼 특수한 환경에서 하루에 5시간씩 보냈고 나머지 시간은 다시 아무것도 안보이는 암실에서 생활을 했다.
 
바닥은 원통배경만 반사시키는 특수한 유리로 만들어져있고(어떻게 만든건지 나도 존나 궁금하다) 저런 긴 원통속에서 살았는데 고양이들은 환경 속에서 수직 선분이나 수평 선분 이외에 다른 모든 모서리나 테두리들을 착용할 수 없었다.
 
그리고 특수한 고깔목도리를 착용시키게 해서 오직 수직선분이나 수평선분 외에 다른 각도로 기울어진 시각자극은 절대 경험할 수 없도록 환경을 그렇게 조작해놨다.
 
5개월동안 이런 성장과정을 거친 고양이들의 결과를 살펴보면....
자신들이 경험한 환경 속에 있는 선분 외에 다른 각도의 선분들에 대해서는 장님이 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령 수직 막대에는 관심을 기울이지만 수평막대는 무시하였지.
 
이런 행동 측정 뿐만 아니라..직접적으로 신경학적으로도 검증을 했다.
 
 
  
 
뇌의 후두엽에는 선조피질(striate cortex), 또는 일차시각피질(primary visual cortex), V1이라고도 불리는 영역이 있다.
이름처럼 뇌에서 시각정보에 대한 최초의 처리기관이다.
 
여기는 단순세포, 복합세포, 초복합세포, 끝멈춤세포 등등등(자세한 얘기는 복잡하니까 생략한다. 관심있는 게이들은 Torsten Wiesel과 David Hubel의 연구를 찾아보라)라고 불리는 다양한 각도로 기울어진 선분자극에만 반응하는 방위각도선택성을 가진 세포들이 있는데..각각의 해당 세포들은 각각 특정한 방향, 각도로 기울어진 선분자극에만 반응을 한다. 우리는 세상을 그냥 힘도 안들이고 보지만 시각정보란게 가만보면 무수히 많은 방향으로 기울어진 선분들이 수렴된 결과다. 뭐 이 얘기는 복잡하고 여기서 큰 관계도 없으니 자세한 부분은 생략 한다.
 
 
아무튼 그림처럼 결과가..왼쪽은 수평선분만 존재하는 환경에서 자란 고양이 신경세포 52개의 반응 각도분포도이고, 오른쪽은 수직 선분만 존재하는 환경에서 자란 고양이의 신경세포72개의 각도분포도다.
 
쉽게말해서 수평선분환경에서만 살아온 고양이는 수평선분, 혹은 비슷한 각도를 지닌 선분에는 저렇게 반응을 하였지만 수직선분에는 세포가 반응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거지.
 
신경세포의 반응과 고양이의 시각경험에 연결되어있단거다
 
결국 이런 고양이들은 발달의 결정적시기 동안에 정상적인 감각 자극을 박탈을 당함으로 해서 정상적인 회로를 뇌에서 구성을 해내지 못했고..결국 모양에 대해서 기능적 장님으로 남아있게 된거지. 
 
 
 
다른학자들이 비슷한 다른 실험을 또 수행 했는데..이번에는 원통이 아니라 저런 고글을 씌워서 발달초기동안 감각 경험을 제한시켰지.
 
결과는 역시나 똑같았다.
 
 
 
사람의 경우는 어떨까?
인간아기도 수평선분과 수직선분만 보면서 살아오면 어떻게 될까?
 
물론 자기 아이를 그런 절차를 거치도록 실험자에게 허락하는 부모는 아무도 없을 것이고, 그런일이 우연히 자연스럽게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어쩌면 이 글을 보는 게이들 중에도 그런 일이 일어났을 수도 있다.
 
전체 유아 중 70%정도에게 난시(astigmatism)가 있는데... 이 난시라는 놈은 한쪽 방향의 선(예를들어 수평, 수직 혹은 사선 중 한 방향)의 선이 흐리게 보이는 것 이다. 난시의 원인은 눈의 비대칭 굴곡 때문임.
 
정상적인 성장의 결과로 4세 어린이에게서는 난시의 발병률이 약 10%정도까지 감소하기도 한다.
 
 
 
 
 
이 그림으로 비공식적인 조금 어설픈 난시검사를 할 수 있는데...
혹시 선들 중 어떤 특정 방향의 것들이 흐릿하거나 불명확해 보이는 병신게이 있는지?
 
그런 병신이 있다면 한번 모니터를 돌리든가 고개를 돌리든가 해서 봐라. 그러면 그 선의 그 모습이 그 위치에 따라 달라짐을 알 수 있다.
 
이 경우..만일 시각피질이 발달하는 민감기 동안 눈에 강한 난시가 있었다면 한쪽 방향의 선을 다른쪽 방향의 선보다 더 분명하게 볼 것이다.
초기에 이런 난시가 교정되지 않았다면 시각피질의 세포들이 더 뚜렷하게 보이는 선들에 더 잘 반응하게 될 것이고, 이제는 눈이 완벽하게 구형이 되더라도 여전히 일생동안 다른 방향의 선들은 흐릿하게 보이게된다. 영원히 일베정회원이란얘기다
 
 
 
 
 
 







 
 
 
순응
 
 
 
새로 안경을 사서 처음 끼면..약간 방향감각을 상실하고..좀 어지럽다. 그치만 하루나 이틀 정도 지나면 결국은 적응을 하게 된다.
이런것을 두고 지각적으로 순응했다라고 한다. 변화된 감각입력에 대한 이런 지각적 순응(perceptual adaptation)들은 결국 세상을 다시 정상적인 것으로 만들어 주지.
 
근데 훨씬 극적인 효과를 나타내는 위아래양옆이 역전돠어 보이게 하는 안경은 어떨까?
 
사람은 분명히 그런 특수안경에서도 적응을 한다.(같이 실험했던 병아리의 경우는 죽었다 깨도 적응을 못했다 한다. 사람의 적응력은 존나 좋다) 
 
 
1896년에 조지 스트라튼이라는 심리학자가 있었는데..이 양반이
 
 
 
이렇게 생긴(이 사진은 본인은 아니고 후버트 돌레잘이라는 다른 사람임) 안경을 끼고 무려 여드레 동안 살았다.
처음에는 먹는것도 불가능했고 구역질이 났고 심지어 우울증까지 왔다고 하던데..결국에는 그걸 노오오력으로 극복해버렸다.
 
심지어 공을 표적을 향해 정확하게 던지기까지 했다고 한다. 
안경을 벗었을땐 되려 역작용을 경험했지만 안경을 썼을때 보다 훨씬 빠르게 재적응을 했다고 함.
 
다른 사람이 했던 후속실험에선(다큐프로그램에서 기획되었던 것이다) 심지어 이 안경을 끼고 오토바이를 타고, 알프스에서 스키를 타고, 심지어 비행기까지 조종했다.
 
 
 
 
자 그러면 이 사람들은 이상하게 보이는 세상을 지각적으로 "정상적"모습으로 변환시켜서 적응한걸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세상은 여전히 머리위에 있거나 반대 방향에 있는 것 처럼 보였고, 그저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반복함으로써 그러한 상황에 적응을 한 것이고, 단지 그에 맞게 자신의 움직임을 조정하는 것을 학습한 것이지.
 
 
 
 
 






 
결론
 

지금까지 장황하고 길게 이야기한 것들이 말해주는것은 딱 한문장으로 압축하면
 
"후천성은 선천성이 부여한 원자료를 조각하는 것" 이다
 
그래서 원 질문의 답을 짧게 말하고 결론을 지으면
 
막태어난 사람이 거꾸로안경을 쓰고 계속 살아간다면
 
인식수준에서 그래도 계속 세상은 거꾸로 보인다.
단지 거기에 운동협응조절과 기타 행위들이 그 뒤집어진 상에 맞게 적응을 할 뿐.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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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zzaniga, M. S. (2011). Who's in charge?: Free will and the science of the brain. New York, NY: HarperCollins.
Kalat, J. W. (2012). Biological psychology.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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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ers, D. G. (2004). Psychology. New York: Worth Publishers. 
Kandel, E. R., Schwartz, J. H., & Jessell, T. M. (2000). Principles of neural science. New York: McGraw-Hill, Health Professions Division. 
Le, G. R., Mondloch, C. J., Maurer, D., & Brent, H. P. (November 01, 2004). Impairment in Holistic Face Processing Following Early Visual Deprivation. Psychological Science, 15, 11, 762-768. http://psych.mcmaster.ca/maurerlab/Publications/LeGrand_Holistic.pdf
Blakemore, C., & Cooper, G. F. (January 01, 1970). Development of the brain depends on the visual environment. Nature, 228, 5270, 477-8. 
Stryker, M. P., & Sherk, H. (January 01, 1975). Modification of cortical orientation selectivity in the cat by restricted visual experience: a reexamination. Science (new York, N.y.), 190, 4217, 9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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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줄요약

1. 타고난걸 바꿀 수는 없다
2. 그러나 닝겐은 적응의 동물이다. 
3. 그리고 그 적응이 여지도 타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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