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목숨 걸고 전쟁하던 옛 시대의 지휘관들

아니 그럼 전쟁하는데 목숨 걸고 하지 무슨 소리냐.... 사실 이게 당연한 반응이긴 할 겁니다.




다만, 보통 우리나라 사람이 태어나서 전근대 시대의 '전쟁' 이라는 것을 보게 되는 경우는 대부분의 루트가 삼국지 소설이나 만화를 보거나, 혹은 그 삼국지에 엄청난 영향을 받은 텔레비전 드라마 사극을 보면서 접하게 되는 경우가 절대다수인데, 이런 삼국지물을 보면 장수들이 말 타고 군대의 맨 한가운데서 돌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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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런걸 많이 보다가 나중에 '사실 삼국지는 순 구라였대.' 하는 말을 듣게 되고, 나중에 되면 어린 시절에 본 것이 구라였다는 것에 대한 큰 충격(?)으로 이번에는 역으로 '지휘관이 목숨 내놓고 싸우는 게 말이 되냐' 가 또 지배적인 인식이 되는 듯 합니다.





여기서 자주 나오는 표현이 '원격 조종' 입니다. 지휘관의 역할은 뒤에서 지휘하는거다, 그렇기 떄문에 본인은 안전한 위치에서 지휘한다, 는 겁니다. 여기서 좀 더 절충론(?)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계급의 지휘관은 원격조종하고, 다만 몇몇 현장 지휘관은 앞에서 싸우기도 한다.' 는 의견도 나옵니다.






그런데 보면서 느끼는게 장군이 병사들의 맨 앞에서 달려가는 수준은 아니더라도(그런데 동서고금을 통틀어서 그런 사례를 찾으면 아예 없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꽤 많이 찾을 수 있을듯), 전근대 시절 군사를 이끄는 지휘관이라는 것은 상당히 목숨을 내놓고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최소한, 맨 앞에서 창칼을 바로 맞을 수준은 아니더라도, '안전한 곳에서 원격조종을 한다.' 는 건 아닌것 같습니다.






일이 그렇게 되는 이유는 딱 하나 입니다. '통신' 문제 말입니다. 뒤에서 자기가 이런 느낌으로 지휘하려고 한다, 고 생각해서 "그렇게 움직여라." 라고 한들, 그렇게 쉽게 움직여 질 수가 없습니다. 명령 내릴때마다 사람 보내서 지휘하면 되지 않는가? 물론 그게 가장 기본입니다. 그런데 이 난장판 속에서 그 전령이 제대로 현장 지휘관을 만나서 지시 사항을 전달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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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털루 전투 때 보면 웰링턴은 수차례 지시를 내리기 위해 사람을 보내는데 나중에는 주위 측근들이 거의 다 죽어나가고 보낼 사람이 없으니 군대에 종군해 있는 상인에게 부탁해서 연락을 보내고, 다 안되니 급기야 나중에는 본인도 직접 움직입니다. 그러다가 프랑스군이 지척에 오니 기겁해서 방진 속에 들어가면서 몸을 피하기도 하구요. 



이 당시 웰링턴은 한두개군의 현장 지휘관도 아니고, 무려 7만에 가까운 영연합군의 총사령관이었는데도 말입니다. 그 밑에서 한두개 군을 이끌고 있는 지휘관들은 말할것도 없습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워털루 전투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벌써 전투 하다 사망, 픽턴은 아군을 독려하며 적에게 반격을 시작하자마자 사망 등등...





최소 수 만이 넘는 부대를 동원해서, 그 부대를 몇천에서 다시 몇만 정도로 나눠 지휘를 맡기고 뒤에서 지휘하는 총사령관 조차도 완전히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 그 나눠진 부대를 맡고 실질적으로 전투를 치루는 지휘관들은 말할것도 없습니다.




명색이 일개 장교도 아니고 장군인데, 사방팔방에서 분단위로 난리가 펼쳐지고 있는데 뒤에서 꿀이나 빨고 있으면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결국 자기도 전면에 나서서 지휘를 해야 하는데 그러는 순간 똑같이 병사들과 함께 사지에 서게 됩니다.





전근대의 전쟁으로 기록이 많이 남았으면서도 전투 하나하나가 세세하게 유명한 나폴레옹 전투 당시를 보면 느낄 수가 있는게, 이러저러한 인물들의 살펴보면 계급이 장군인데도 전사자가 많거나, 혹은 전투에서 다쳤다 이런 설명이 붙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더군요.




당장 그 천하의 나폴레옹도 툴롱 공방전 당시에 다리에 칼 맞은 적 있습니다. 그래도 나폴레옹은 비교적 다친 적은 적은 편입니다. 뮈라도 이집트에서 칼 맞았고, 란은 이집트에서 다들 죽은 줄 알았는데 겨우 살아난 적이 있습니다. 기병대 지휘하던 베시에르, 라살도 죽었고, 궁정대원수 씩이나 되던 뒤로크도 죽었습니다.




 
보로디노 전투는 무려 양측 합쳐서 20만이 넘는 부대가 한 전장에서 맞 붙었던 전투인데, 10만이 넘는 러시아군을 2개로 나눴을때 그 1개 군을 거느리고 있던 바그라티온도 치명상 당하고 사망합니다. 10만이 넘는 부대 전체에서 서열 3위 안에 들어가는 사람도 전쟁터에서 속절없이 죽어 나는 겁니다.





이 경우에는 그나마 전투에서 '안전하다' 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총사령관과 그 주위에서 시중 드는 사람들 뿐입니다. 그 보로디노 전투에서 보면 뮈라나 네이등이 싸우고 있을때 총사령관으로 뒤에 있던 나폴레옹이나, 바그라티온이나 톨리가 싸우고 있을때 총사령관으로 있던 쿠투조프 같은 사람들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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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경우에는, 실제 전투에서 그 역할을 어느정도 가감을 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 우리가 '전쟁과 평화' 로도 익숙한 보로디노 전투라고 하면 '명장 나폴레옹 vs 명장 쿠투조프' 의 싸움이라고 여깁니다. 




그런데 이것은 군대의 규모가 점점 커지는 것과도 관련이 있는데, 실제 전투 동안 쿠투조프가 전투에 개입한 것은 러시아 정규군과 별도로 움직이던 카자흐 기병대가 "상황 봐서 우리가 프랑스군 측면 쳐도 되는가." 하고 묻자 "그래라." 라고 승낙한 것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나머지 전투에서 만들어진 모든 상황은 현장에서 군 지휘하던 바그라티온이나 톨리 이하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나폴레옹의 경우 비슷하게 총 동원군 규모 10만, 전투 당시 7만 가까이 부대를 동원했던 워털루 전투 당시도 그렇습니다.





워털루 전투라고 하면 우리는 '승부사 나폴레옹이 운명을 걸고 한 마지막 혈전' 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자기 운명을 걸었던 숙명의 싸움에서 나폴레옹이 한건(마침 건강도 별로라 꿈지락거린점도 있지만), 전투에 전에 "오늘 싸움은 오후부터 하자." 그리고 "전에 말한 곳인 여기 여기로 공격하자." 이 정도가 다입니다.





나폴레옹이 전투 전에 "우구몽을 공격하자." 고 지시하기는 했겠지요. 일단 상황이 펼쳐지자, 나폴레옹은 하루종일이 되도록 우구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도 못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네이가 돌격할때도 나중에서야 "아니, 지금 저 작자가 무슨 짓을 하는거냐?" 고 구경꾼이라도 되는듯 당혹해하는것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즉, 안전을 확보하면서 멀리서 '원격조종' 이라는 방식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정말로 극히 제한적이라는 겁니다. 만약 그 이상으로 무언가 하고 싶다면, 반대편의 웰링턴이 그러했듯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현장을 살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웰링턴이 프랑스군의 위협을 방진 속으로 숨어서 피했듯 당장 위협에 노출되는 셈이구요.





그런데 사실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완전히 안전한것도 아닙니다. 비교적 후방에서 별 움직임도 없이 머물었던 워털루 전투 당시의 나폴레옹 같은 경우에도, 포격 때문에 나폴레옹의 바로 근처에 있던 포병 관련 핵심 장교가 죽어나가기도 했을 정도니 말입니다.





여하간 수개의 군단이 한꺼번에 움직일때 그 여러 군단을 총지휘하는 총사령관의 입장도 이러했다, 고 하는데, 그러면 큰 전장에서 그 지시 받고 움직이는 그 이하 부대의 사령관들이나, 그냥 아예 전체 군 자체가 한개 군단 정도 밖에 안될때는 더 말할 것도 없을 겁니다.




이 경우는 더 기록이 간략하고 건조한 중국 사서에서도 '원격지휘' 와 완전히 반대되는 기록을 일일히 셀수도 없이 찾을 수도 있습니다. 원나라의 '승상' 이었던 엘 테무르가 반란군과의 야전에서 '적 장수가 내지른 창을 몸을 틀어서 피한 뒤 역으로 창을 찔러 반격했다' 라거나, 정난의 변에서 정난군 총사령관이자 훗날 명제국의 황제가 되는 '영락제 주체' 가 적장이 내지른 창을 겨우 피했다거나, 직접 화살과 칼이 다 부러지도록 싸웠다거나....






 여하간에 그냥 생각나서 써본 뻘글이 쓸데없이 길어졌는데 요약하면,



 


 1. 전근대 전쟁에서 '원격지휘' 는 극히 한계가 있었다.




 2. 일단 전쟁터에 나온 이상, 야전군 총사령관급이 아닌 이상 사단장급 정도에 해당하는 장군들은 거의 목숨 내놓고 적군과 직접 드잡이할 각오 정도는 해야 하는 상황이 굉장히 많았다. 이런 느낌입니다.




고구려 - 수나라 전쟁으로 치면 100만 대군의 총사령관인 수양제 정도는 확실히 안전하겠고, 그 외에 우중문-우문술-내호아 같은 경우는 슬슬 목숨이 위험해지기 시작하고, 그 바로 휘하 부터는 출정하면서 가족들에게 만일의 상황에 대해서 미리 언질 좀 해주고 목숨 내놓고 가야할 정도





제갈량의 북벌로 치면 제갈량 정도가 그나마 덜 위험하지만, 상황에 따라 아예 위험이 없지는 않고, 그 외에 위연-오의-왕평 부터는 진짜로 목숨 내놓고 싸우는듯한...





딱히 무슨 공식이라고 할건 없지만 그동안 제가 보고 느낀건 그렇더군요.



돌고 돌아서 가장 친숙한 삼국지 이야기로 가보자면, 경력을 야전에서 숱하게 싸우는 것으로 쌓은 사람들은 사선을 수두룩하게 넘긴 무골들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원래가 하급 장교였는데 '군공' 으로 출세해서 고위급 장군까지 된 경우는 어이쿠...



출처 - https://pgr21.com/pb/pb.php?id=freedom&no=79042 신불해님 작성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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