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속 정보 - 인간 vs 똥 (2)







1949년, 콜레라의 악몽이 한풀 꺾였다고 생각했지만,








그 4년 뒤인 1853년 콜레라는 다시한번 런던을 덮친다.




  




존 스노우는 이번에야 말로 콜레라의 원인과 해결 방법을 강구할 것이라 생각하며,

콜레라로 인해 죽은 가족들의 집을 조사해본다.






그 결과 브로드가의 한 지역에서만 유별나게 엄청난 죽음이 있었음을 발견,








공통점으로는 단 한가지 우물에서 물을 퍼 마셨다는 점을 찾았다.


장교는 물론이고



커피숍 고객




그 우물의 물을 마신 이들은 단체 운지..






그 우물의 물이 아닌 맥주만 마신 양조장 직원은 멀-쩡




 

독기 악취 ㅁㅈㅎ!!!!!!!!





 

콜레라는 수인성 전염병이다!!!!!!!!!









콜레라가 수인성이라는 스노우의 이론은





너무나도 급진적인 것이었고,



 



의료계의 뭇매를 맞게 된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가슴으로 못받아드리겠당께!!





 


 . . . . . .아이 엠 그루트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노우는 펌프를 ㅁㅈㅎ 시켰고,






그 지역의 병은 사라지기 시작!

의료계에서는 이렇게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한편 바잘제트게이는 노가다꾼이 되어







진성 일베충의 길을 걷고 있었고





하수구의 설계와 착공을 앞두고 있었다.







그가 사용한 원리는 무려 노짱을 이끈 중력.

 그는 템스강으로 빠져나가던 분뇨의 스케일을






바다까지 키웠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탈의 경사도를 계산하여 하수구가 막히거나 닳는 일이 없도록 해야 했고 






 

하수구를 강 밑으로 짓는 만큼





이 하수를 다시 퍼올려 강 하류 >> 바다

로 나가게 해야 하는데





 

런던은 아직 이런 정도의 기술력이 없었다.




이 문제만 해결된다면 하수를 통제하여 밀물과 썰물에 맞추어 바다로 흘려보낼 수 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








또한 어디서 하수를 뿌릴지도 관건이였는데,






우리나라의 누구와는 달리 바젤제트는 혈세를 낭비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많은 연구와 조사의 끝, 1856년






그리하여 완성한 그의 계획은





헴스테드, 노팅힐, 첼시로부터 시작하는 세개의 하수구를 건설하여






대도시를 중심으로 하여 오수를 바다로 흘려보내자는 것






이렇게 시작된 바젤제트의 계획은




당시 최대의 토목사업이 되었고,






안정성과 효율성을 모두 잡는 최적의 형태를 필요로 했다.







바잘제트의 설계도는 학계에서 인정받았지만






다시한번 문제가 된 것은 탁상공론의 행정부였다.








심지어는 언론에서도 바잘제트를 혹평하기 바빴고,








5번에 걸친 재설계에도 영국 정부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런던의 오수는 전염병을 확산시키고 있었다.





 

1858년의 웨스트민스터의 여름은 유난히도 더웠는데,









악취 + 더위 콜라보는 런던 전역의 사람들을 덮쳤다.



 

의회는 나몰라라 런던을 피해 달아났다.












결국 의회는 마지막 보루로 바잘제트의 계획을 이행하였고,










1859년, 주사위는 던져진 것이다.





-3부계-


 오랜만에 써서 그런가 분량 조절이 잘 안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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