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저장소) 옛날 한국어는 어땠는지 ARABOZA feat. 고대한반도



한반도에서 약 8000만 인구에 의해 쓰여지는 한국어는 그 계통에 대해 여러가지 학설들이 있지만,

현재 가장 널리 받아들여 지는 것은 고립어라는 것임. 

즉, 예를 들어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등등 여러 유럽언어가 "인도유럽어족" 이라는 커다란 카테고리안에 다함께 묶이는 것과 달리

한국어는 주변에 사촌뻘의 언어가 존재하지 않는 말이다. 물론 학설인 만큼 언젠가는 다른 학설에 의해 뒤짚어 질수도 있음.



그런데 21세기 지금의 한국어가 과연 2000년 전에도, 혹은 1000년 전에도 지금과 같은 모습이었을까? 

학자들은 사실 한국어라는 언어는

한반도내 여러 국가들의 언어가 때로는 정복과 때로는 교류를 통해 시간이 지나며 하나로 합쳐진 언어라고 본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현재 남아있는 고대 한국어는 자료가 없어도 너무나도 없기 때문에,

고대 한국어에 어떠한 단어들이 있었고, 어떠한 문법이 었는지, 서로 얼마나 소통이 가능한 언어였는지에 대해

우리가 깊이 알수있는게 없다ㅠㅠ

학자들마다 의견이 너무나도 다르고, 각각 학설들도 터무니 없는 주장은 아니기에 근거없는 소리는 아니지만

일단 현재 가장 통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론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래도 그나마 빈약하게 남아있는 자료를 토대로 학자들이 연구해본 결과,

고대 한반도에서 쓰였던 언어는 크게

1. 부여계 (부여, 고구려, 동예, 옥저 그리고 백제의 지배층) - 고구려를 위시한 한반도 북부와 강원도 그리고 만주에서 쓰였을 것으로 추정

2. 한계 (마한, 진한, 변한) -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및 경기 남부 지역에서 쓰였을 것으로 추정

이 두 계통의 언어였을 거라고 추측한다.


 
부여계 언어는 말그대로 만주에 위치해있던 고대 국가 부여에서 썼었던 언어로, 

이 부여어는 같은 부여계로 추정되는 주몽이 세운 고구려,

고구려에서 떨어져나온 같은 부여계 세력이 세운 백제,

그리고 동해안에 존재했던 동예와 옥저라는 부족국가 집단에서 널리 쓰였을 것으로 봄.


한계의 언어는 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던 부족국가 연맹체였던 마한, 진한, 변한에서 쓰였을 것으로 봄.


물론 학자들마다, 고구려어, 백제어, 신라어 모두가 같은 계통의 언어라는 주장도 있지만 해외에서까지 쉽게 받아들여지는 가설은 아니라한다.



(어디까지나 가설일뿐 100프로 맹신하지는 마라)

즉 정리를 해보자면

고대 한반도에는 부여계 언어와 한계 언어가 있었고,

고구려, 백제는 부여계 언어를, 

신라와 가야는 한계 언어를 썼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 백제로 대표되는 부여계와 신라로 대표되는 한계 언어를 조금 대조해보자

 
 부여계신라계
성(城), 마을벌, 부리, 비리
산(山)달, 다라모이, 뫼
계곡, 골짜기
미, 매믈, 므르
바다나미바달

눈치빠른 게이들은 여기서 느꼈을텐데, 현대한국어가 신라어와 유사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특히 벌, 부리는 옛 한국어 지명에도 찾아볼수가 있는데, 

경주는 서라벌

대구는 다구벌

부여는 소부리

계백의 마지막 전투였던 황산벌 등이 있다. 

참고로 황산벌이란 이름이 붙기 전에, 백제인들은 이 지역을 산이 늘어섰다고 하여,

누르리모이(늘어선 산)라고 불렀는데, 이를 나중에 신라 경덕왕이 한자화하면서 누를 황과 뫼 산자로 "황산"이라 개칭한다.

다시 말해, 황산벌은 과거 "누르리모이부리"라 부렸을 가능성이 매우 높음.  




(부여 - 고구려 - 백제로 이어지는 부여계 언어의 이동)

한가지 특이한 점은, 백제의 지배층은 고구려에서 갈라져 나왔기 때문에 고구려어와 같은 계통의 언어였지만,

백제의 지배층인 북방계 민족이 남쪽으로 들어오기 전부터

마한의 영역이었던 지금의 서울 경기의 수도권, 충청남도, 그리고 전라북도 지역에서는 여전히 한계 언어가 쓰였을 것이라는 점이다. 

백제의 왕과 귀족들은 고구려 출신이었기에 그들사이

즉 백제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언어가 달랐던 사회였던것으로 추정된다. 

예를 들면 지배층이었던 백제 신하들은 왕을 "어라하"라고 불렀지만 백성들은 "건길지" 혹은 "코니기시"라고 불렀다고 한다.




참고로 "건길지" 라는 말은 충남과 전북 일대에 거주하던 마한의 피지배층이 왕을 부르던 말이었는데

"건" 또는 "코니" 현재 한국어의 "큰" 그리고 "길지" 혹은 "기시"는 중세 한국어로 왕을 뜻하던 "기지"라는 설이 매우 유력하다.

또 전통 민요 중에 "어라 만수" 라는 노래가 있는데 이는 "임금님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노래로 노래가사의 "어라는" 

부여계 언어로 왕을 칭하는 "어라하"에서 왔다고 한다. 






허나 백제가 고구려에 계속 발리면서 점점 남쪽으로 수도를 옮겨가는데 (장수왕 전투력 ㅆㅅㅌㅊ)

(현재의 서울 - 충청남도 공주 - 충청남도 부여 순으로 도읍이 점점 아래로 내려감)

이에 따라 지배층의 언어에도 남쪽지방민의 언어인 한어가 조금씩 스며들었을 것으로도 생각된다...


(백제병사의 전투복)


이를 뒷받침해줄 증거로 중국의 역사책인 양서(梁書)에서 신라인에 대한 기록에는 




"그들은 절하고 다니는 걸음걸이가 고구려와 비슷하다. 문자가 없어서 나무에다가 새겨서 이것을 가지고 남과의 약속을 했다. (고구려 사람과) 말을 하는 데는 백제 사람을 중간에 놓아야만 했다"

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시간이 고구려와 신라의 언어는 확실히 달랐고,

백제의 언어는 고구려와 같았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백제 피지배층의 언어도 흡수하였기때문에

신라어와도 다소 비슷했졌을 거라 조심스레 추측된다. 

즉, 고구려어-백제어-신라어는 일종의 방언연속체였을 가능성도 있었음.




그러나 신라가 한반도를 통일하고 난 후

신라어가 한반도 전체로 서서히 퍼졌으며,

신라는 그간 자신들을 시도때도 없이 털고 털고 또 털던 백제와 고구려에 대해 당연히 감정이 졸라게 좋지 않았으므로

고구려와 백제 유민들에 대해 고구려어와 백제어를 쓰지 못하게 억압하기 시작함.

그에 따라 시간이 지나면서 

백제 고구려어는 일상어로써의 지위를 잃고, 한반도의 언어는 신라어로 완전히 대체되었으리라 여겨진다.

(위의 테이블에서 현대 한국어와 신라어와의 유사성이 높은 이유도 이로 설명됨)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주목할만한 가설이 있는데



현대 일본인은 야요이인과 조몬인이라는 두가지 그룹의 혼혈로 알려지 있다.

조몬인은 남방계 그룹으로서 야요이인들이 일본열도에 들어오기 전부터 있었던 집단이었고

야요이인들은 북방계 그룹으로 한반도를 통해 조몬인들을 정복해 나가면서 반도의 문화를 일본에 전파했다고 여겨짐.



이런 맥락에서 보면 한반도를 통해 들어온 북방 야요인들의 언어가

북방 부여계 언어인 고구려어와 백제상류층 언어와도 비슷하다는게 얼추 말이 되긴한다.

긴말말고 한번 비교해보자
 
 부여계 언어 (고구려 &백제)현대 일본어
파도나미나미
계곡, 골짜기다니
미, 매미즈
미츠
다섯이츠
일곱나는, 나난나나
고무구마

아직 더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꽤 흥미로운 주장임에는 틀림없다. 

그 외의 일본서기에 기록된 백제어로는
 
어륙, 오루쿠왕비
니리므
하시가시부인
소쿠
시소가운데
오도아래
세시무왕자
스키마을

등등이 있고, 일본서기에 기록된 신라/가여어로는
 
아리히시, 아로시아래
나리나루
모로, 모이
코호리고을
코니, 코
세마

등이 있다.






참고로 일본이 백제를 부르던 단어가 "쿠다라"라는 말인데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던 충남 부여에는 구드래나루라는 지역이 있다.

이 구드래나루는 금강을 타고 배들이 드나들며 과거 백제의 항구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이 되는데

쿠다라라는 단어는 구드래에서,

구드래는 "굳+으래"로 이는 다시 풀이하면 "큰어라" 즉 대왕(大王)을 의미한다고 한다.

즉, 일본에서 봤을 때 일본에 선진문물을 전달해 주던 백제를 대왕의 나라로 보아 "쿠다라"가 나왔단 설이다.





백제와 일본의 언어적 유사성은 이뿐이 아니라 사람 이름에서도 드러나는데

백제의 인물들은 모두 두글자의 성과 두글자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부여 사마 (扶餘 斯麻)

귀실 복신 (鬼室 福信)

흑치 상지 (黑齒 常之)

등이 있는데 일본인들도 마찬가지로 두글자의 성과 두글자의 이름을 가진 것이 묘하다.


아키히토 전 일본 왕. 한자로는 継宮 明仁으로 앞의 継宮(계궁)이 성,  뒤의 明仁(명인)이 이름.

백제와 왜의 교류가 활발했던 만큼, 고대 일본어에는 어쩌면 지금은 사라져버린 고대 한국어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끝-


3줄요약

1. 고대 한반도에선 고구려, 백제의 부여계 언어와 신라의 한계 언어가 있었음.
2. 신라가 통일을 하면서 부여계 언어는 지명을 제외하곤 일상 언어에서 자취를 감춤.
3. 현재 한국어는 신라어의 직계 후손. 하지만 한국어에서 사라진 부여어는 일본어에도 영향을 주었으리라 생각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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