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으로 망하고,마약으로 일어난 나라.중국 (完) 공산당과 아편




1934년 11월 10일

국민당이 100만 대군을 동원하여 진행한 제 5차 초공작전으로 

강서성 서금(루이진)에 있던 중화소비에트인민공화국은 멸망했다.









그러나 인민공화국 즉 중국 공산당 핵심 위원들은

이미 함락 한달 전인 10월에 서금을 떠나

서쪽으로 이동하여 국민당 눈을 피해 도망쳐

북쪽의 섬서성 연안(옌안)까지 2년 동안 약 1만 킬로미터를 이동해 겨우 살아남았으니

이를 대장정이라 한다.

1936년,연안에서 살아남아 명맥을 잇던 공산당은

강서성에서 인민공화국을 이끌던 기존의 인사들 대신

제 5차 초공작전에서 군사작전 문제로 다른 지도자들과 갈등을 벌여

가택연금을 당했던 인사를 중심으로 지도부가 물갈이 되어 새로 개편했으니 













그 중심에 있던 인사는 모택동이었다.

(다만 모택동은 이전에도 공산당 당 지도부 중 한명이었다.)

그는 중국 공산당에 남아있던 친소련 인사들을 초공작전 방어 실패의 책임을 물어 몰아내고

자신과 주은래,팽덕회 등등 자신을 따르는 인사들을 중심으로 중국 공산당을 새로 개편했다.

그리고 그는 중국 공산당을 부활시키나 문제는 그 방법이 매우 어둡고 더러운 방법이었으니....











당시 섬서성 연안은 바로 위가 내몽골이라 기후가 건조하고 옛날부터 농사를 지어온 탓에 지력이 다하고 땅이 매우 척박해

농사가 쉽게 될 형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공산당에겐 돈벌이로 쓸만한 다른 산업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소련의 지원 역시 기대할 수준이 못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연안 주변의 땅과 북중국 일부만 조금 소유하고 있는 공산당에게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라며,값 역시 싸지 않고,확실한 수요가 있는 산업이 있었으니




















바로 아편이었다.

일찍이 공산당은 아편을 극히 부정적으로 보며

아편 판매를 해대며 농민들을 학대하는 다른 군벌들을 집중 공격하며 겉으로는 그럴듯한 모범집단으로 사람들을 속였으나,

정작 공산당 역시 아낌없이 아편 판매를 하며 똑같이 자신들이 그토록 숭상하던 인민들을 학대하던 것은

매우 아이러니하고도 이중적인 일이었다.

더군다나 아편 재배 역시 사탕수수 재배로 위장하고서 자신들은 아편을 취급하지 않는 것처럼 속이기까지 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대다수 사람들 역시 공산당에게 그닥 좋은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고 한다.)









1937년,중일전쟁이 시작되며

아편은 아래론 농민부터 위로는 일본군,국민당과 공산당 간부들에게까지 널리 퍼져

아편으로 살아가던 공산당에게 일본의 침략은 국민당 세력을 줄여주는 것과 동시에 큰 돈벌이가 되는 천재일우의 기회나 다름없었다.

더군다나 공산당 아편을 사들여 공산당에게 막대한 재화를 지불하던 국민당 장군들과 인사들도 적지 않았으니

아편은 그야말로 허울뿐인 민심 대신

공산당 최강의 무기이자 최후의 생명줄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공산당은 아편 재배와 판매를 더욱 늘려

일반 인민과,국민당 심지어 일본군에게까지 아편 팔이를 해댔을 정도였다.

당시 일본이 점령한 만주와 내몽고 일대에도 아편 재배는 있었지만 수요가 모자라

그 틈을 공산당이 제대로 노린 것이었다.







연안 주변에만 3만 에이커의 양귀비밭이 있었으며,

아편으로 벌어들인 돈이 1943년 기준 24억 법폐(당시 중화민국의 화폐 단위)

그 당시 돈으로 미화 6000만 달러이자 현 가치로 6억 달러가 넘는

아이오와급 전함 1척을 짓고도 남는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







중일전쟁이 끝나고 다시 국공내전이 펼쳐질 무렵,

중국은 더 이상 마약에 찌들려야 찌들 수가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빠졌으니

1948년 당시 중국 인구는 6억이 채 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편 중독자들은 8000만명에 달하여

전 인구의 약 15% 정도가 아편 중독자였을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공산당은

중일전쟁으로 세력을 불린 것과 동시에,

국민당의 약화로 반사이익까지 얻어

결국 중국을 통일하기에 이르었다.

(이거 자세하게 쓰려면 너무 길어서 그냥 축약

다만 삼대기향 팔향주의로 민심을 얻었다는 건 믿지 않는게 좋음)









통일 직후 모택동은

그 동안 아낌없이 이용했던 아편을

한순간에 폐기하는 정책을 펼쳐

8000만명에 달하던 아편 중독자들을

때론 죽이면서,때론 강제로 중독 치료(를 빙자한 학대,구타)를 하면서

불과 3년 만에 (토지개혁 포함)아편 중독자 치료로 약 300~400만명을 죽여 가며

일단 중국에서 아편을 몰아내는 데엔 성공했다.










도광제부터 모택동까지,

두세기 동안 100년 이상 중국을 좀먹던 아편은

나라를 무너뜨리고 동시에 나라를 세울 정도로 영향력이 막대했으니

그야말로 마약으로 망하고(청)

마약으로 일어난(중공) 셈이 되겠다.








3줄요약

1.청나라는 마약으로 망했고,

2.중공은 마약으로 일어났다.

3.글이 부실하네 번외편도 써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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