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모르거나 부정할 일본의 역사에 대해 아라보자.


안녕 게이들 이렇게 정보글로 쓰는건 오랜만이다 이기야. 오늘 할것도 없고 심심하기도해서 이렇게 역사관련 글이나 써볼까해. 오늘의 주제는 일본의 역사에 대해서 아라보자.



참 답이 없는 새끼지,,

한국인들은 일본하면 발작을 떨면서 욕하기 바쁘지 일본이 어떻게 선진국 강대국 기술강국, 문화강국이 됬는지는 모르는서 말이지.

목차
(1)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관계와 국력차이
(2) 일본이 잘나갔던 이유1 배움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3) 일본이 잘나갔던 이유2. 기술자들과 상인(기업가)들을 우대했다.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관계와 국력차이

처음부터 일본이 한국보다 잘살지도 않았고 강대국도 아니었어. 오히려 일본이 한국(주로 백제)와서 배워가고 상국(?)처럼 모시던 나라였지.


일본 125대 천황인 아키히토

일본의 황실도 백제인의 후손으로 아키히토 전 일본 천황이 직접 발언했었적이 있었어,

사실 한국인과 일본인은 유전적으로 가까운 관계로 북방유목민족(튀르크, 몽골 등)들이 한국에 정착해 한국인이 되고, 거기서 일부 한국인들이 일본열도로 건너가서 현재의 일본인이 된거거든.

이는 유럽으로 치면 독일인이 영국으로 넘어가서 영국인이 되고 영국 국왕을 한거랑 비슷하다고 보면 됨.

12세기까지는 고려가 일본보다 국력이 더 강했지만 13세기 이후(그동안 무신정권이네, 여몽전쟁이네, 원간섭기등등 혼란의 영향도 있었음)가 되면서 일본의 인구가 고려의 인구를 추월하고 국력도 추월하면서 일본이 한국보다 더 국력이 강한 강대국이 되었어.


일본과 도요토미를 깔보면서 선조에게 전쟁이 안일어난다고 말했던 김성일.

그럼에도 한국인들은 아직도 일본이 미개한 나라라는 착각에 빠져있었어. 조선이 들어서고 나서 그게 더 심해져서 중국만 바라보는 멍청이가 되어 일본이 아직도 미개한 나라인줄 착각한거지 위에 김성일처럼. 그 대가는 뭐.. 임진왜란떄 줘터졌지 ㅋㅋ

현재의 일본과 한국의 국력, 기술력, 문화차이는 한국인들이 생각하던가 보다 더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나.



2019년 기준 노벨상 수상 국가 순위

일본은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중에 유일하게 노벨상 수상 국가 10권안에 들어가는 국가임.

짱깨는 8개 한국은 0개

하나 있지 않냐고?

대중이가 받은건 이름은 노벨평화상이지만 대부분 노벨평화상은 노벨상 취급 안해줌. 그러므로 한국은 0개가 맞다. 실제로 노벨평화상은 매우 논란이 많은 상임.


암튼 재앙이새끼가 맨날 반도체 불화수소 국산화하겠다 뭐하겠다 개지랄을 떨어도 일본은 한국보다 압도적인 기술강대국이야. 한국은 삼성 하나만 가지고 있지 좋은 기술을 갖고있는 기업을 많이 가지고 있지않아.


소프트파워에서도 일본은 10위안에 들어가지만(개인적으로는 5위 안에 들어가지 않나 싶은데..) 한국은 이제서야 20위권 이내에 들어설정도로 격차가 심해. 물론 K팝의 부상으로 좀 위상이 올라갔지만 일본에 비하면 햇병아리 수준이다.



그럼 일본은 어떻게 기술강국, 문화강국, 강대국, 선진국이 됬을까? 


#일본이 잘나갔던 이유1 새로운것을 배우는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일본은 섬나라야 섬나라라는 것은 고립되었다는 것으로 일본 안에서는 더이상 배울수 있는것이 없었어. 그래서 일본은 고대시대부터 다른나라로 부터 무언가를 배우는데에 전혀 망설임이 없었어.

쇼토쿠 태자

쇼토쿠 태자가 집권한 6~7세기 일본은 당나라로 사신을 보내서 당나라의 문물을 모조리 배워와 일본에 적용시키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일본이 서서히 발전하기 시작했음. 

쇼토쿠 태자 이후에도 일본은 다른나라로 부터 배워오는것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었고 적극적으로 수용했어. 그렇지 않으면 다른나라에 뒤쳐지기 때문이지. 

16세기 포르투갈 상인들을 묘사한 일본의 그림. 일본에 처음으로 도달한 서양인이 포르투갈인이다.

그런식으로 쭉 가다가 16세기때에 이르러 포르투갈인들이 일본에 도달하여서 각종 기독교 포교와 빵, 튀김, 조종을 전수해줬었는데. 포르투갈 상인들이 도달한 곳이 다네가 섬이라는 일본 남쪽에 위치했던 섬이었어.


그중 조총은 1543년에 아르카부스(아쿼버스, 하쿼버스)를 전해준 포르투갈인 선원들이 탄 배우가 표류한 일본의 섬, 다네가 섬에서 처음 도입되었어.


다네가시마 토키타카의 동상

이 섬의 영주 다네가시마 토키타카는 포르투갈인 상인들을 만나면서 조총 2정을 영락전 2000필에 샀어. 지금의 일본엔의 가치로 환산하면 1억엔에 달하는 거금의 돈이었지 ㄷㄷ 참고로 영락전은 명나라 영락제 때 주조된 돈으로서 유럽의 프랑스 프랑이 유럽국가들 화폐중 메이저였던 것 처럼 아시아국가들 화폐중에 메이저였어 당시 일본에서는 영락전을 수입하여 국내 통화로 사용했고. 
 

영락전

암튼 두정의 조총을 사서, 한정은 본인이 소지하고 다른 한정은 스기보노라는 장인에게 주어 그 화기 작동 방식과 총신을 복제하도록 했다. 스기보노는 총의 거의 모든 부품들을 문제없이 만들었으나 총열과 총의 아랫부분을 결합하는 방법을 몰라서 여기서 막혔어. 그래서 스기보노는 그 제작기술을 알아내기 위해 자기의 딸을 포르투갈인에게 주기까지 하면서 결국 알아내게 됬어.

그렇게 1년후 수십정의 조종이 완성되었고 수년뒤에는 조종 제작법이 전 일본에 퍼져 나가며 일본의 군사력이 급격하게 강화되게 되었어. 그리고 그 조총들으로 전국 3영걸(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이 전 일본을 통일하면서 마침내 일본은 하나가 됬으며

일본은 세계 10위안에 들어가는 강대국이 되었어.



16세기 당시 세계를 호령했던 강대국들. 왼쪽부터 오스만 제국, 명나라, 스페인 제국, 프랑스 왕국, 폴란드 리투아니아, 일본


도요토미 히데요시

이러한 자신감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중국의 명나라를 점령하려고 시도를 했어. 하지만 아쉽게도 조명 연합군과 이순신때문에 실패하고 말아. 역사에 만약은 없다만 만약 선조등 조선의 수뇌부들이 일본과 손잡고 같이 명나라를 쳤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들곤함. 물론 애초에 도요토미는 조선도 점령하려고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애초부터 불가능했겠지만.

임진왜란의 패배로 도요토미 정권이 몰락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막부를 개창하면서 일본의 최고지도자로 군림하게 되었어



도쿠가와 이에야스


#일본이 잘나갔던 이유2. 기술자들과 상인(기업가)들을 우대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이 이긴걸로 알려졌지만 사실 이긴싸움은 아니었어. 그리고 일본입장에서도 임진왜란은 진 전쟁이 아니었어 비긴거였지 오히려 임진왜란을 계기로 일본의 기술력, 문화등이 향상되기 시작했어


많이들 알려져 있듯이 임진왜란 당시 수만명의 도공들이 일본에 끌려갔는데 처음에는 착취당할거라고 생각했던 조선도공들을 일본인들은 매우 극진히 예우했고, 일본에 정착해서 살수있게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어. 그 결과 대다수의 끌려간 도공들은 일본에 정착해서 그대로 현재까지 살아왔으며, 나중에 조선관리가 조선으로 데리고 가려고 일본에 방문했지만 거의 대부분의 도공들이 귀향을 거부했어.


이후 조선 도공의 영향을 받은 일본의 도자기는 17세기 이후 서양에 수출되면서 일본을 알리는데 톡톡히 효자노릇을 했음.

17세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을 통일하고 일본에는 평화가 찾아왔어. 도쿠가와 막부(+이전의 일본 집권자들)들은 위에 써져있듯이 기술자들을 극진히 우대했고 상업을 장려하기 시작하면서 상인들(현재의 기업가들)을 크게 우대하게 되.

그 결과 일본은

이 그림은 도시의 옷가게인데
 

정기적인 바겐 세일이라든가 고객이 직접 옷을 입어보도록 진열해놓는 등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상술이 발달했고.

오늘날의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격인 종합상점이 에도시대에 등장하기 시작했어. 심지어 간판이나 광고의 초기 형태도 에도시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어.



금, 은, 동은 물론 지폐까지 다양하게 화폐가 발달됬었어. 당시 세계적인 은 교역국이었어. (참고로 조선은... 음 나중에 확인시켜줌)


화폐가 발달하면서 금융업도 이때부터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했어.

 

그리고 에도막부 때부터 상업 대도시가 발달하기 시작했어.

 

천황이 기거하는 곳은 교토였지만

이미 에도(현재의 도쿄. 메이지 유신 이후 현재까지 일본의 수도가 됨), 오사카, 나고야처럼 교토를 능가하는

인구 수십만의 상업 대도시들이 우후죽순 생겨났어.

 

소설, 연극, 그림, 공연같은 도시의 대중문화가 크게 흥하고 바쁜 도시인을 위해 패스트푸드격인 덴푸라, 스시도 이때 처음 생겨나게 되었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도 일본에 있었고, 지금도 일본에는 300년 400년된 기업들이 많아.

그 결과 1850년대 조선, 에도막부, 청나라중 일본이 어느나라가 제일 잘살았는가? 하면

일본이 제일 잘살았다. 


그런데 조선은 일본이 이렇게 발전할떄 뭐했지?

사농공상

상농공상이란 쉽게 말해 상인들(현대의 기업가), 기술자들을 천대하는 것이야. 바로 조선은 여기서 끝난거야.
상인들을 천대하고, 기술자들을 천대하는데 어떻게 발전을 하지? 전혀 안되지. 위에 써져있듯이 기술자였던 도공들이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가고 나서 다시는 안돌아왔어. 일본이 조선보다 훨씬더 도공들을 극진히 대접했기 때문이야.



사농공상 마인드를 가지고있는 새끼들이 조선 군주부터 관리들까지 대가리에 그런거 밖에 안들어있으니 나라가 발전하겠음? 절대 발전 안된다. 그래서 조선은 발전이 안되는 상태로 19세기까지 중세만도 못한 경제체제를 유지하고 있는것이야.

조선시대때 조선 민간에서 유통되는 화폐는 냥이네 원이네 이렇게 알고있지만 사실 조선시대에 화폐는 쌀이야. 경제가 후진적이여서 화폐가 발달되지 못했어. 그것도 20세기 초반까지..  19세기 후반에 일어난 임오군란이 왜 발생했노? 구식군인들 월급을 쌀로줬는데 그 월급인 쌀에다가 모래 섞어서 일어난게 임오군란임. 그정도로 조선은 화폐도 발달안되고 상업도 발달안되있고 기술도 발달 될려다가 중간에 꺾인 나라야.

근데 이런나라가 안망한다고? 아니지 조선은 오히려 일찍이 망했어야할 나라가 안망하고 20세기 초반까지 간게 더 신기한거지.



그리고 그 사농공상의 악령은 21세기 현재 대한민국에 남아있어 좌파들이 대한민국을 조선시대로 되돌릴려고 하고있어. 

다시한번 말하지만. 기업가들, 기술자들을 천대시하는 나라는 절대 잘 살수 없다.


이상으로 오늘 정보글을 마치겠음.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 
언제 다시 이런 정보글을 쓰게 될지는 모르지만
반응이 좋으면 유럽 패권이야기도 쓸까 생각중이야.

8줄 요약 

1 한국과 일본의 국력격차는 고려시대 이전까지는 한국의 우위였지만 고려시대 이후에는 일본이 우위가 되어 현재까지 이어짐
2 일본은 섬나라고 내부에서 배우는것에는 한계가 있기때문에 
3 밖에서 배워와야했고 새로운것을 배우는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음.
4 16세기 이후 기술자들, 상인들을 극진히 예우하고, 상업을 장려함
5 그 결과 1850년대 당시 한중일 3나라중 일본이 제일 잘사는 나라가 됨.
6 근데 조선은 사농공상을 고집하면서 기술자들과 상인들을 천대했고
7 그결과 조선은 제일 못사는 나라가 되서 일본에게 먹힘
8 21세기 현재 한국의 좌파빨갱이들이 조선시대로 되돌릴려고 나라 망쳐먹는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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