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S의 전성기를 알아보자-(1).araboja

신화가 되기 전 연습생 시절의 에릭과 앤디를 볼 수 있는 무대영상.

 

 

 

 

 

 

 

 

 

1집 곡 <I'm Your Girl>로 화려한 데뷔를 마친 S.E.S는 본격적으로 전성기에 접어든다.

 

 

 

 

 

 

 

 

 

 

 

이후 S.E.S는 후속곡인 <Oh, My Love>로 활동한다.

 

 

 

이장우 2집 수록곡인 〈널 만난 이후〉를 리메이크한 〈Oh, My Love〉는 비교적 평범한 노래였던 원곡에 SM 특유의 힙합적인 느낌과 S.E.S.의 예쁘장한 화음이 더해져, 보다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곡으로 바뀌었다. 

 

 

예쁜 가사와 상큼한 멜로디, S.E.S.의 아기자기한 속삭임이 조화를 이루는 곡으로, 원래 남자 가수의 노래였다는게 짐작이 가지 않을 정도로 여성스럽고 나긋나긋한 느낌을 주는 곡이기도 하다. 〈I'm Your Girl〉의 압도적인 존재감 때문에 조금 빛이 바라는 것 같기도 한 곡이지만, 이 노래가 있었기에 S.E.S.의 요정같은 세련되고 산뜻한 이미지가 후속곡에서도 계속 유지될 수 있었다.

 

 

〈Oh, My Love〉에서 S.E.S.는〈I'm Your Girl〉에서 보여준 모습에서 약간의 변화를 꽤하며 또 다른 이미지로 타이틀곡 못지않은 많은 사랑을 받았다.

 

 <I'm Your Girl>은 뉴질스윙의 리듬으로 청순함에 파워풀 안무를 곁들여 당찬 사랑 고백 메세지를 전했다면 〈Oh, My Love〉에서는 좀 더 쉽고 친근하게 들을 수 있는 팝적인 느낌이 가미된 음악을 선보이며 수줍은 느낌의 사랑 고백 메세지를 전했다. 무대위에서의 스타일과 안무또한 많이 달라졌다. 〈Oh, My Love〉에서는 자신들의 나이대에 보여줄 수 있는 깨끗하고 풋풋한 학생다운 이미지를 강조하였다.


실제로 무대 의상도 흰 셔츠에 통이 넓은 힙합 바지등 간편하고 따라하기 쉬운 패션이 주를 이뤘다. 당시 7nani라는 캐쥬얼 브랜드에서 자사의 이미지와 가장 잘 어울리는 연예인을 설문 조사한 결과 S.E.S.가 선정돼 지면 광고 모델로 발탁되면서 의상 협찬을 받기도 했으며, S.E.S.가 보여준 통이 넓은 바지 패션은 당시 학생들 사이에서 대유행하기도 했다. 안무면에서도 파워풀한 군무가 주를 이뤘던 〈I'm Your Girl〉보다는 좀더 한층 따라추기 쉽고 살랑살랑함을 강조하는 안무를 보여줬다.

 

 

 

 

 

 

 

 

 

 

 

 

 

 

 

5월에는 농심이 새우깡의 10대 소비자 유입을 위해 새로운 10대들의 우상으로 떠오른 아이돌 스타 S.E.S.를 1년 계약 개런티 1억 5천만 원이라는 당시 신인 걸 그룹으로서는 파격적인 대우로 계약하여 첫 CF 촬영을 가졌다. 

 

 

이후 마지막 팬서비스 차원으로 〈데자뷰〉, 〈완전한 이유〉, 〈Nonsense〉 등을 결합한 메들리로 2, 3주간 활동을 이어나갔다. 당시 걸 그룹으로서는 이례적으로 한 앨범에 무려 5곡이나 활동하는 기록을 남기게 된다.

 

 

 

 

 

 

 

 

 

 

 

 

 

 

 



 

5월 31일 세종대학교 대향홀에서 걸 그룹으로서는 최초로 공식 팬클럽 창단식을 가지며 성대했던 1집 활동에 종지부를 찍는다.

 

 

 

 

 

 

 

 

남학생들은 마치 홀린 것처럼 레코드 가게로 찾아가 집단으로 이들의 CD를 사댔고, 데뷔한 12월부터 나우누리 팬클럽 게시판에는 하루에 1,000개가 넘는 글들이 매일 올라왔다. 

 

엠넷과 KMTV에서는 프로그램마다 이들의 뮤직비디오를 한번씩 방송했고, 순위에 진입하자마자 이들은 공중파 3사의 순위프로를 싹쓸이했다. 이 모든 것들이 한 달 안에 이루어졌다. '혜성과도 같이 등장해서 가요계를 점령' 과 같은 구태의연한 표현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사례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당시 나우누리에 올라왔던 S.E.S 관련글들.

 

*맨아래 게시물을 보면 바다가 최지우 닮았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건 <I'm Your Girl> 뮤비에서 바다가 너무 이쁘게 나와서 그렇다. 실제로 뮤비 이후 무대에 바다가 처음 등장했을때 대중들 사이에서 멤버교체설이 떠돌기도 했다고 한다.

 

 

 

 

 

 

 

 

S.E.S.의 성공 이후 본격적인 걸그룹의 태동기가 시작되었다. 그동안 검증되지 않았던 젊은 남성층이 걸그룹의 새로운 구매층으로 떠올랐고, 1998년은 S.E.S.를 필두로 한 여성 댄스그룹 붐의 본격적인 시발점이 된 해였다. 

 

 

핑클, 베이비복스 2기(1기는 이전글에 나와있듯 좆망) 등 후발주자들도 등장해 인기를 얻게 된다.









2집 타이틀곡 〈Dreams Come True〉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외국곡을 차용한 유로 댄스팝으로 신비스럽고 몽환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를 강조하여 청순을 극대화한 요정 이미지를 구축하기 시작한다. 1집에 비해 한층 파워풀해진 안무와 비음 섞인 목소리 등 국내 정서와는 다른 이질적인 곡 분위기 때문에 거부감을 갖는 팬들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런 점들이 신선하게 느껴져 대히트를 하게 된다. 

 

또한, 새로운 사운드 소화에 성공함으로써 가창력과 성장 가능성을 갖춘 아이돌 그룹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Dreams Come True〉는 핀란드 여성 듀오 나일론 비트의 〈Like A Fool〉를 리메이크한 곡으로 1997년 이수만이 폴란드에 머물고 있던 작곡가를 만나 판권을 사들였다. 노래길이가 길고 지루한 데다 곡의 절정 부분이 약해 곡을 사오는 과정에서 이 노래를 S.E.S.의 분위기에 맞춰 보완할 경우 우리나라 작곡자 이름을 함께 올려도 되냐는 허락을 받아 유영진이 원곡에 새로운 멜로디와 스캣랩 등을 추가하여 공동 작곡가로 이름을 올려놓았다.




당시 일본에서도 막 데뷔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일주일 단위로 양국을 오가며 활동을 병행하게 되는데, 막 활동을 발표한 S.E.S. 입장에서는 치명적인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앨범 판매량은 호조를 보여 일주일 만에 33만 장을 기록하며 월간 1위를 차지한다.

 

 

 

 

 

 

 

이후 후속곡인 〈너를 사랑해〉까지 대중적으로 큰 히트를 거두면서 걸그룹의 선두주자로 자리를 굳히는 데 성공했다. S.E.S. 이미지에 딱 들어맞는 소녀 스타일의 스쿨룩 컨셉이 호평을 받으면서 활동 2주 만에 공중파 음악방송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빠른 속도로 인기몰이를 하게 된다. 이는 가수의 이미지와 컨셉이 딱 들어맞을 때 어떤 파급력이 생기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당시 후속곡 활동 일주일 만에 1위 후보에 올랐던 S.E.S.가 그 다음주에 바로 1위 후보에서 제외되자 순위 선정에 의문을 품은 팬들이<SBS 인기가요>에 강하게 항의하는 일이 있었는데, 결국 해당 프로그램은 방송에 출연하지 않는 가수는 1위 후보에서 제외한다는 방침을 공식적으로 시인하기에 이른다.

게다가 활동 막바지에는 슈가 만성 위염으로 쓰러지면서 굿바이 무대도 가지지 못한 채 급하게 활동을 마무리하게 된다. 당시 S.E.S.는 일본과 대만을 오가며 가히 살인적인 스케쥴을 소화하고 있었는데, 귀국하자마자 출연한 <뮤직뱅크> 방송이 끝나고 슈가 실신해서 병원에 실려가는 바람에 의도치 않게 2집 마지막 방송 활동이 돼버렸다. 리허설 때도 실신해서 대기실에서 응급조치를 받으며 누워있었다고 한다. 

 

슈는 1집 때부터 만성위염으로 고생을 많이 했는데 아플 당시에는 독한 약을 하루에 6번씩 먹으면서 버텼다고 한다. 나중에 이것과 관련해 악질 안티들이 여자 아이돌로서는 치명적인 내용의 루머(임신설)을 퍼트리는 바람에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무튼 2집 활동까지 그야말로 대박을 친 S.E.S는 1999년 3집 활동으로 최전성기를 맞이한다.

 

 

 

 

 

 

 

 

 

 

 

 

 

3집의 타이틀곡 <Love>.

 

 

 

 

<I'm Your Girl>에서 보여준 뉴질스윙의 장르지만 <Love>에서 S.E.S.가 전했던 메세지는 <I'm Your Girl>의 그것과는 많이 달라졌다. <I'm Your Gir>이 남성에게 적극적이고 당찬 마음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내용이었다면 <Love>는 첫 사랑이라는 감정의 달콤함과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더 진실해지고 단단해지는 소녀의 감성을 오로지 소녀의 시선으로 표현한 노래이다. 

 

한마디로 소녀에서 여인으로 성장하는 시기에 놓여있던 S.E.S.의 성장통과 딱 맞아떨어진 노래라고 할 수 있다. S.E.S.가 남성팬층뿐만 아니라 여성팬층까지 흡수할 수 있었던 큰 요인은 그녀들이 노래했던 메세지에 잘 드러나있다.

남성들이 꿈꾸는 남성에게 의존하고 기대는 수동적인 여성상이 아니라 소녀의 마음을 대변하는 메세지와 밝고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가사는 소녀팬들의 공감과 환상까지 얻을 수 있기에 충분했다. 3집 타이틀곡 〈Love〉는 한국적 멜로디 위주의 전략을 내세운 다른 걸그룹과는 다르게 파격적인 염색과 비비드 장식으로 화려함을 더한 이국적인 컨셉으로 고급스런 접근을 시도했고, 〈Love〉라는 곡으로 음악적인 퀄리티에 있어서 만큼은 타 여성 댄스 그룹들의 수준을 저만치 따돌려 놓기에 이른다.

S.E.S.는 등장했을 때부터 처음이라고는 믿기 힘든 완성도를 지닌 그룹이었고 결과야 어찌됐든 해외 활동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경험을 거의 유일하게 쌓고 있었던 만큼 그에 걸맞는 포지션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원산지가 해외인 〈Dreams Come True〉에서는 이질적인 요소도 함께 부담해야 됐지만 자체적으로 공수한 〈Love〉는 한 치 부족함이 없는 높아진 위상 그 자체였다.

그동안 S.E.S.하면 성적인 코드를 발산하지 않으면서도 예쁘다는 느낌을 꾸준히 주었으며 거기에 적절히 외국 느낌이 나는 세련됨으로 앞서가는 그룹의 전형을 만들어 내었지만 그것은 전부 〈Dreams Come True〉까지 보여주 듯 어린 요정이라는 아이돌 가수의 틀 안에서 구현된 것들이었다. 하지만 〈Love〉는 어렵지 않게 그녀들을 아이돌이라는 한계에서 탈출하게끔 해주었다. 유영진의 최고작이라는 평가받는 아름다운 멜로디와 아름다운 노랫말, S.E.S.라는 그룹의 이미지와 아주 적절히 맞아 떨어졌을 뿐더러 아이돌 댄스라는 한정된 디렉토리 안에서 '음악만으로도 승부를 할 수 있는' 여성 댄스 그룹의 존재로 한 발 더 나아가게 된다.

노래 제목처럼 S.E.S.가 〈Love〉에서 노래하는 사랑이라는 화두는 어리기만 했던 그때와는 분명히 다른 감정으로 노래된다. 〈I'm Your Girl〉처럼 너무 철없이 들뜨지도 않고 그렇다고 〈Dreams Come True〉처럼 환상으로만 둘러싸여 있지도 않은채 조금씩 생활안에 편안함으로 묻어나는 사랑의 현실적 감각을 미디움 템포안에서 캐쥬얼한 발라드로 표현해 내며 기존 10대 팬들의 호응과 20대 팬들의 또 다른 발견을 이끌어 낸다.

S.E.S.는 3집으로 자신들의 가수 커리어뿐만 아니라 걸 그룹 역사상 대기록을 갱신하는 위업을 남기게 된다. 발매 3일만에 550.030장이 팔려나가 걸 그룹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걸 그룹이라는 기록을 남겼으며, 총 누적 판매량 760,475장을 돌파하며 단일 앨범 기준 걸 그룹 역사상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걸 그룹으로 기록되었다. 이는 1998년 5월 한국영상음반협회가 설립되어 대한민국 가요 역사상 최초로 공식적인 음반 판매량을 집계한 이후 걸 그룹 뿐만 아니라 여자 가수로서도 최다의 기록이고, 90년대 초반 신나라레코드가 집계한 발표한 연간 음반 판매량 차트까지 포함하면 이소라의 80만장에 이어서 여자 가수로서 2번째의 최다 앨범 판매라는 대기록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활동 중반에는 에뛰드와 1년 계약 2억 5천만원이라는 당시 여자 가수로서의 최고의 몸값을 갱신하며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으며, 화이브미니와는 6개월 계약 1억 6천만원의 개런티로 광고 계약을 체결하기도 하였다.

 

 

 

 

 

 

 

 

 

슈가 가장 이뻤던 시기라고 생각되는 <Love> 활동 당시 모습.

 

 

 

 

 

 

 

 

 

 

 

 

 

 

 

 

 

 

 

 

 

 

 

 

 

이후 S.E.S.는 후속곡 <Twilight Zone>으로 활동한다.

 

이로서 다시 한 번 1999년 연말부터 2000년의 초반부를 확실하게 장악하게 된다. <Twilight Zone> 활동 초반 슈의 배꼽티 의상과 'Com into my bed'의 가사말이 야하다는 지적때문에 의상과 가사를 부라부랴 수정하며 공중파 3사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Twilight Zone>은 <Love>에서 보여준 소녀에서 여인으로라는 S.E.S.의 성장통을 담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Twilight Zone>에서 보여준 S.E.S.의 모습은 <Love>보다 더 대담해지고 과감해졌다.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고 집착하는 여성의 모습을 담았다.

 

그에 따라 그들의 스타일과 안무는 더욱 더 성숙함이 배가되었다. 특히 초반 활동 당시 성숙함과 세련미가 넘치는 정장룩과 코트룩 스타일은 지금보아도 세련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0년 1월 23일 SBS 인기가요에서는 당시 연기자에서 가수로 전업하여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SKY의 <영원>을 누르고 3집 활동 이후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공중파에서 1위를 수상하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3집에서 S.E.S는 이전의 귀여운 요정에서 세련된 요정의 컨셉으로 이미지를 변신시켰다.

 

 

 

 

 

*3집은 앨범 발매 3일만에 55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넘는 등 여전한 인기를 과시했으나 활동에 있어서는 악재가 있었다. 보수적인 성향의 KBS는 머리색을 문제삼아 노랗게 염색한 머리 색깔이 시청자에게 혐오감을 주고 청소년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라는 같잖은 이유로 방송 출연을 금지시킨바 있다.

 

 

 

 

 

 

 

 

 

 

 

 

 

 

 

 

 

 

 

 

 

 


 

3집 활동을 마친 이후 멤버들은 1주일 가량의 휴식을 가지고 2000년 3월 19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드디어 자신들의 첫 단독 콘서트를 열게 된다.

 

대한민국 대중 가요 역사상 단독 공연 최초로 인터넷으로 콘서트 티켓표를 예매하기 시작하였고, 이틀 만에 전석 매진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당시 공연계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콘서트에는 한국팬들뿐만 아니라 일본팬 대만팬도 공연을 관람하러 원정까지 왔고, 박진영도 콘서트를 관람한 바 있다. 콘서트 이후 한국, 대만, 일본의 100여명의 기자단과 동시 기자회견을 가졌으며 대한민국 가수 최초로 3개의 언어로 가지회견이 진행되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하였다.

첫 단독 콘서틀 성황리에 마친 S.E.S.는 이후 얼마 안 돼서 3월 26일 서울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현 우리금융아트홀)에서 제3기 공식 팬클럽 창단식을 가지며 3집 활동을 총정리한다. 이후 4월 1일 일본 활동을 위해 일본으로 출국하여 마지막 남은 일본 활동을 펼쳤다.

 

 

 

 

 

 
 

일본 진출 당시 신문 기사.
 
 
 
 
 
 
 
 
 
 




 
일본 활동 당시 앨범 자켓과 잡지 기사.
 
 
 
 
 
 
 
 
 
 
 
 
 
 
 
 
S.E.S는 이후에도 4집, 4.5집, 5집을 내며 전성기를 이어나간다.
 
사실 S.E.S는 황혼기 없이 전성기만 누리다가 해체한 그룹이다.
 

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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