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의 시작 S.E.S에 대해 알아보자.araboja


소위 걸그룹 내지는 여성 아이돌이라 할 수 있는 가수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오늘날 우리가 걸그룹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의 기틀을 마련한 그룹은 S.E.S이다.


 

(역할 분담, 캐릭터, 소녀 이미지, 10대를 겨냥한 음악 스타일 등등)

 

 

그룹명 S.E.S는 멤버 세명의 영어 이름 Sea, Eugene, Shoo의 앞글자를 딴 이니셜이다.

 

 

 

 

 

 

 

 

 

 

 

1990년대 후반 우리나라 가요계는 여자가수 기근에 시달렸다. 여자 가수가 히트곡을 내는 건 1년에 두세번 있을까말까한 일이었고,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부터 20위까지 남자 가수들이 싹쓸이했다. 가요 순위 프로그램은 너무나도 삭막했다 박미경, 강수지, 신효범, 엄정화, 이소라 정도가 명맥을 유지하며 순위에 이름을 올리는 정도였다.  

 

당시 여성 그룹, 특히 여성 아이돌 그룹 쪽의 시장은 우리나라 음반 기획자들이나 레코드사들에겐 미지의 땅과도 같았다. 영국의 스파이스 걸스, 일본의 SPEED, 미국의 TLC와 같은 그룹들이 수백 수천만장을 팔아치우며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며 많은 제작사들이 의욕적으로 여성 그룹을 기획하고 도전했지만, 결과는 모두 실패로 끝났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레이블 반도음반에서 내놓았던 걸그룹 애플, 일본식 아이돌을 표방하며 해외 진출까지 시도했던 4인조 SOS, 한국의 TLC를 꿈꿨던 에코, 삼성뮤직의 후원아래 홍콩에서 데뷔했던 이뉴, 여성들의 대변자를 자처했던 대형 그룹 베이비복스 1기까지 많은 그룹들이 데뷔했지만 성과가 만족스러운 걸그룹은 한 팀도 없었다. 남성 팬들의 호주머니를 열게 하기엔, 여성 그룹 시장의 진입 장벽은 너무나 높았다.

 

 


당시 현진영과 유영진을 발굴하고 H.O.T를 데뷔시키며 선견지명을 과시했던 SM의 이수만은 걸그룹 시장의 잠재성을 인식하고 1996년 가을 무렵부터 걸그룹 프로젝트를 기획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들은 서두르지 않았다. 앞선 수많은 여성 그룹들의 선례를 보면서, 여학생 팬들이 확보되어있는 남자 그룹들과는 달리 맨몸으로 부딪쳐야 하는 여성 그룹은 조금이라도 어설프게 보여서는 씨도 안 먹힐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여성 댄스 그룹을 기획하면서 2년동안 자그마치 1만명이 넘는 소녀들을 오디션했다는 사실이 SM의 신중했던 준비과정을 말해준다. 오랜 오디션 끝에,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3명의 소녀들이 선발되었다. 안양예고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한 최성희, 괌 교포 출신의 김유진, 일본 가나가와현에서 태어난 재일 교포 유수영. 가창력과 외모, 춤실력은 물론이고 출신이나 나이, 외국어 구사 능력까지 고려된 결과였다. 당시 S.E.S. 후보였던 연습생은 총 8명으로, 바다가 먼저 리드 보컬로 정해지고 난 뒤, 유진과 슈가 서브보컬로 정해졌다.



오랜 준비와 투자, 트레이닝 기간을 가졌던만큼 S.E.S.에게 좀 더 야심적인 음악이나 화려한 이미지를 씌워 줄 법도 했지만 SM은 오버하지 않았다. 오히려 S.E.S.를 통해 보여진 것들은 무척 심플하고 소박한 것이었다. 이것저것 다 하려 했던 다른 여성 그룹들과는 달리, SM은 히트곡을 만들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공식에 충실했다. 곡이 좋을 것. 노래를 잘할 것. 가수가 매력적일 것. 그리고 다른 요란한 이미지들 대신 그 바탕 위에서 극도의 세련미를 추구했다. 가수의 외모는 비현실적일 정도로 깔끔하고 청순한 이미지로 단장되었고, 꽉 짜여진 안무와 감각적인 뮤직비디오가 보태졌다.

 

 

 

 

 

데뷔곡 <I'm Your Girl> MV

 

 

 

 

 

 

 

 

 

 

데뷔 무대.

 

 

 

 

 

 

 

 

 

 

 

 

1997년 11월 28일, SBS 《충전! 100% 쇼》를 통해 데뷔한 S.E.S.는 데뷔와 동시에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키며 단숨에 인기스타로 급부상하게 된다. S.E.S.의 데뷔곡인 〈I'm Your Girl〉은 뜨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로 흠잡을데 없이 괜찮은 노래다. 여성그룹 시대의 서막을 열어젖히려는 듯 서서히 밝아지는 사운드와 함께 S.E.S.를 소개하는 그룹 신화의 멤버 에릭과 앤디의 랩이 섞이는 감각적인 도입부는, S.E.S.라는 대형 그룹의 등장을 알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We open of the new chapters, Here we come, here come" 하는 랩 가사는 S.E.S.가 이루어낸 엄청난 성공을 알고 있는 지금 더 의미심장하게 와닿는 부분이다. 

 

인트로, 각 절의 배치와 후렴구, 코러스, 랩, 브리지와 애드립에 이르기까지 이 곡의 모든 부분은 놀랄 정도로 정교하고 완벽하게 통제돼 있다. 이것은 멤버들의 보컬 분담과 음역, 호흡, 사운드의 흐름, 심지어 곡의 재생 시간까지 철저하게 분석하고 계산한 결과이다. 작곡가 유영진의 재능과 더불어, 이 곡의 작업에 1997년 당시의 최신기술로 SM의 모든 역량이 대대적으로 투자되었음을 볼 수 있다.

 

 

 

S.E.S.의 성공은 예견된 결과였다. SM의 철저한 기획과 트레이닝, 멤버들의 빼어난 미모와 재능, 훌륭하게 만들어진 타이틀곡과 근사한 뮤직비디오까지 어느 하나 흠잡을 데가 없었다. SPEED, 스파이스 걸스, TLC 같은 여성 그룹들이 해외에서 대박을 거듭하는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던 우리나라 가요팬들에게, 그리고 소녀들이 H.O.T.나 젝스키스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며 시샘했던 소년들에게 S.E.S.의 등장은 너무나도 적절하고 나이스한 타이밍이었다. 

 

이전의 걸그룹들이 최대 수요인 젊은 남성층에게 어필하기 어려운 컨셉, 예를 들어 사회비판이나 실력을 전면에 내세운 미국식 등을 내세운 것과 달리, S.E.S.는 이들에게 소구하기 쉬운 순수하고 청순한 컨셉으로 준비되었으며, 곡 자체도 누구나 무리없이 들을 수 있는 세련된 스타일의 팝 댄스곡이었다. 검증되지 않은 시장에서 가급적이면 많은 대중에게 접근하기 위해 취했던 접근방식이며 동시에 당시 시장에서 검증된 유일무이한 여성 아이돌 강수지의 뒤를 잇는 안전한 전략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여기에 더해 추가적으로 당시로서는 강도높은 댄스를 준비했다는 것은 특이할 만한 점이다

 

 

 

남학생들은 마치 홀린 것처럼 레코드가게로 들어가 집단으로 이들의 CD를 사댔고, 데뷔한 12월부터 나우누리 팬클럽 게시판에는 하루에 1,000개가 넘는 글들이 매일 올라왔다. M.net과 KMTV에서는 프로그램마다 이들의 뮤직비디오를 한번씩 방송했고, 순위에 진입하자마자 이들은 공중파 3사의 순위프로를 싹쓸이했다. 이 모든 것들이 한달 안에 이루어졌다.

 

그동안 잠재하고 있었던 전국의 무수한 사춘기 소년들과 빡빡머리 군인들, 기타 등등의 남자 팬들이 어엿한 구매층으로 떠올랐고, 60만장이라는 높은 판매고로 그들의 구매력은 입증되었다. 남자 팬들은 S.E.S.의 등장으로 여성 가수를 좋아한다는 즐거움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고, 여가수들은 S.E.S.의 대박에 힘입어 약진을 거듭해 남자 가수들을 능가하는 세력으로 성장했다. 황무지에 하나의 꽃이 피어나 그 꽃가루를 퍼뜨려 향기로운 꽃밭을 만들어내듯(...) S.E.S.의 등장은 남자들이 득세했던 삭막한 가요계에 수많은 미소녀 그룹들이 피어나는 결과를 가져왔다. 영턱스 여자 멤버들을 보며 누가 예쁘다고 싸우던 불우한 남학생들은 이런 미소녀 그룹들의 등장으로 지금까지의 무료함을 완전히 씻어낼 수 있었다.

 

 

 

 

 

 

 

 

 

 

 

 

* <I'm Your Girl> 이외에 S.E.S의 히트곡으로는

 

<Oh, My Love>, <너를 사랑해>, <Dreams Come True>,

<Love>, <꿈을 모아서>, <감싸안으며>, <Just A Feeling>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S.E.S 노래로 글을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