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 칼 융과 신비주의


안녕 게이들아? 오늘은 심리학자 칼 융의 신비술사적인 면모에 대해서 알아볼게






































현대 심리학의 대부라면 유명한 프로이트와 칼 융이 있어.

정신 의학자였던 그가 마법과 신비학 그리고 연금술에서 모티브를 딴 이론을 발표 했었다면 어떨까?

























정신분석 운동의 초기에 융은 프로이트의 [꿈의해석]을 읽고 나서, 

이 새로운 이론이 자신의 고찰과 상당 부분 일맥상통 하는 부분이 있음을 깨닫고 흥분해. 

하지만 당시 프로이트의 동조자가 되는 데에는 학자로서 많은 위험이 따랐는데, 

주위의 동료들은 자칫 학계에서 매장될 수 있다며 충고를 빙자한 위협을 가하기도 했지.





하지만 "프로이트가 말하는 것이 진리라면, 나는 기꺼이 그의 편에 서겠다" 라고 응수했지.

두사람은 1906년부터 1913년까지 활발히 서신을 교환했어. 친목질 ㅁㅌㅊ?

그리고 프로이트는 정신분석 운동에서 융을 기꺼이 2인자, 또는 황태자로 인정하려는 의향을 드러냈지.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점차 입장의 차이가 두드러졌어.

가장 첨예한 갈등은 프로이트의 성 이론에 대한 융의 비판이야.





"나는 꿈과 히스테리의 복잡한 메커니즘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프로이처럼 어린 시절의 성적 트라우마에 유일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또 프로이트처럼 성을 과도하게 전면에 부각시키지도, 성이 심리적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라고 말이야.
































 

특히 1909년에 융과 프로이트는 7주간 미국을 방문하게 되는데, 이 여행은 두 사람의 결별을 가속화 시킨 계기가 되었어.

이때의 경험을 통해 융은 프로이트에게 "진리보다는 개인의 권위를 더욱 앞세운다는 인상을 받았으며, 프로이트의 이론이 일종의 도그마와 개인숭배로 변질되었다는 점에서 거부감을 느꼈다."라고 말하지.

또한 프로이트 역시 융이 "종교나 신비주의 같은 미심쩍은 '고대의 잔재'에 관심을 보이는 것에 불만을 느꼈다." 라고 말이야.

이 대목에서 우린 알 수 있어. 



























바로 융이 왜 그토록 비과학적인 '진리'라는 단어에 집착했는지 말이야.

사실 융은 의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종교적이거나, 신비스러운 마법이나 연금술의 지식에 대해 그렇게 부정적이지 않았어.

그랬던 그의 성향은 프로이트와의 결별로 중대한 전환점으로 찾아왔지.





















 

융은 이때부터 무의식의 세계에 대한 비과학적인 탐사를 본격적으로 몰두 했는데, 이 시기에 그는 여러가지 불가사의한 신비현상을 체험했어.

가령 1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직전에는 대규모 재앙에 대한 환상을 봤다 던지, 유령을 목격하거나 의미심장한 꿈을 꾸는 경우도 적지 않았지.














 

이때부터 융은 신비학, 영지주의, 마법 연금술의 연구에 몰두 했으며, 무의식의 본질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자기 안의 또 다른 인격의 목소리를 듣고, 만트라를 치료의 도구로 응용하기도 했어. 

그리고 그 부산물로 여러 권의 개인적이고 비밀스러운 기록을 남겼는데, 이런 기록을 읽어볼 수 있었던 특권을 누렸던 한 친구는 그에게 이런 평가를 내렸어.

"융은 그 자신이 걸어다니는 정신병원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병원의 최고 의사이기도 했다."














융의 이론에 내재된 이중적인 성격은 아마도 그의 관심이 평생 동안 마법과 과학으로 양분된 까닭이었을 거야.

의사인 동시에 신비체험자였던 그는 과학의 방법만으로는 쉽게 규명할 수 없는 거대한 세계가 인간의 내면에 들어있다고 확신했어. 

그래서 그의 후반기 저서는 종종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인상을 주기 때문에, 과학자를 빙자한 공상가로 비판받기도 하지. 

하지만 융은 과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현상에 대해 정신의학의 입장에서 최대한 객관적인 해명을 시도하려고 했어.























 

그가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마법학은 아마 '신지학'으로 예상 되는데, 

사실 칼 융이 제시한 '집단무의식'이라는 개념은 이미 신지학(神智學)의 마법사, 신비술사 들이 목표로 하는 

[아카식 레코드]라는 이름으로 흔히 알려 졌었기 때문이야. 






















 

신지학은 흔히 반유대, 아리아인의 우월성을 내세운 '나치독일'의 정서적인 정당성을 제공한 학문이기도 해.

그리고 여기에 영향을 받은 칼 융은 '친나치' 학자라는 오명을 쓰기도 하지.




































 

아무튼 이들이 말하는 '아카식 레코드(Akashic records)'란 대체 뭘까?

아카식 레코드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사건, 상념, 감정이 명세 되어 있는, 세계의 기억이야. 

이 개념은 과거의 모든 사건의 흔적이 어딘가에 영원히 새겨져 있다는 발상에 기초해. 
























 

이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기억이 거대한 클라우드 서버로 어딘가에 저장 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편해.

쉽게 말해 우리는 생명체로써 어딘가에 존재하는 그 서버에 업로드만 할 수 있지만, 그 서버에 접속해

기록을 [다운로드] 할 수 있다면, 이 세상의 모든 비밀과 진리를 깨우칠 수 있다는 종교적인 논리이기도 하지.























 

아카식 레코드에 대해 쉽게 풀어 놓은 영화가 하나 있어.

그건 바로 영화 루시

평범했던 주인공인 루시는 뇌의 능력을 끌어 올리는 걸 계기로, 

아카식 레코드에 접속하게 되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언어를 구사하기도 하며 여러가지 초능력을 행사하기도 해.





















 

인류 최초의 여성이었던 루시. 그리고 그녀를 빗대어 설명한 지구의 모든 기록인 아카식 레코드.

한마디로 아카식 레코드란, 지구가 존재 할 때부터, 세상에 탄생 했을 때부터 쌓여져 온 거대한 기억의 공동체라는 게 신지학자의 주장이야.

물론 비 논리적이고 비 과학적인 이야기지만,

이들의 주장에 칼 융은 대단히 흥미를 느끼고 탐구에 몰두했어. 





























 


그 기록은 동양학자 리하르트 빌헬름이 번역한 [황금 꽃의 비밀]을 읽고 연금술의 의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면서,

여러 차례 아프리카와 인도를 여행하며 당시 유럽을 양분하던 기독교를 바탕으로 한 친유대 마법과, 신지학을 주축으로 한 반유대적인 마법이나 신비술 외에 

다른 문화권의 신비술을 체험하며 그들만의 '아카식 레코드'의 흔적을 찾으려고 노력했지.

만약 '아카식 레코드'라는게 정말 존재한다면 반드시 다른 문화권의 종교나 신비술에도 그 기록이 있을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야.


























 




칼 융은 1913년 자신이 연구하고 나름대로 정립한 아카식 레코드의 결과물을 가지고 강단에 서게 돼.

그리고 자신의 이론을 '분석심리학'이라고 명명했지.

이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나 블로일러의 '심층심리학'과 완전히 대비되는 개념이었는데, 프로이트가 '개인무의식'의 규명에 열중했다면,

융은 보편적이고 원초적인 차원의 '집단무의식'이 있다고 주장했어.

융의 이론에서 가장 유명한 개념은 바로 '집단무의식'을 설명하는 '원형'이라고 볼 수 있는데,

"집단무의식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것으로, 고대에서 만물의 공감이라고 불렀던 것의 기초" 라고 융은 설명해. 

또한 원형은 "집단무의식의 데이터"이며, 그 중에서도 "고대의, 또는 원초적 유형, 즉 고대로부터 존재해 온 보편적 이미지" 라는 거지. 

가령 '모성/부성' '영웅'같은 것이 그런 원형의 이미지이며, 신화나 민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어.











 

또 융은 자기실현의 최종 단계인 '자기'는 의식과 무의식이 온전하게 통합된 것을 말하며, 우리의 의식을 일컫는 '자아'보다는 더욱 큰 개념이야

융은 이것을 '자기원형'이라고 불렀으며, 그 궁극의 형태는 신과도 유사한 개념이라고 간주해서 학계의 주목을 받았어.

이러한 융의 논리는 사실 신지학에서는 흔한 개념이었어.




















 
또 그의 사상 가운데 일반인들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심리학적 유형론인데, 

아카식 레코드에 지배를 받는 인류는 결국 다 비슷 비슷 하기 때문에, [심리적 유형론]이란 그의 책에선 사람은 두가지 유형(내향성, 외향성)과 네가지 기능(사고, 감정, 감각, 직관)을 범주로 성격 구분법을 제안했어.

물론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유사과학에 가까운 검사도구 였지만, 그 당시에는 상당히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 되었어. 











 

우리가 흔히 아는 마이어-브릭스 유형지표, MBTI 성격검사법도 바로 융의 심리적 유형론을 토대로 만든거야.

프로이트의 이론이 범성욕주의로 비난을 받았듯이, 융의 이런 이론들은 학자들에게 비과학적이라고 비난을 받았어.

특히 신화와 종교는 물론이고 영지주의 연금술, 마법, 만다라, 도교, 주역에 대해 연구한 그의 글들은 워낙 모호하고 불투명해서 갖가지

오해를 불러내기도 했어.









물론 융의 이론에 담겨있는 가능성에 주목한 사람들도 많아. 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는 융과 함께 '동시성'이론을 연구했고,

종교학자 미르체아 엘리아데아 조지프 캠밸은 그의 연구를 신화 연구에 적용하여 대중화 시켰지.

정신과의 임상 치료부터 예술 작품에 이르기까지 융의 이론은 오늘날가지도 자주 논의되고 또 설득력을 얻고 있기도 해.



















 
로렌스 반 데어 포스트는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어.

"칼 융의 말이 맞든 아니든, 그가 남긴 연구는 세월이 갈수록 점점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2줄요약

1. 칼 융은 원래 마법, 연금술에 관심이 많았으며 프로이트와의 결별로 이를 연구하게 되는 계기가 됨.

2. 신지학, 인지학의 '아카식 레코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집단 무의식'이라는 이론을 제시함.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