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들 안녕? 오컬트 관련 글쓰는 게이야 오늘은 나치와 오컬트에 대해서 이야기 해볼게
히틀러는 독일 국가사회주의 노동자당, 즉 나치당(the Nazi)의 지도자였고,
나치 독일의 제 1대 총통.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유태인 수백만 명을 학살한 장본인이야.
1914년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히틀러는 25살의 나이로 독일 제 14보병연대에 자원 입대해.
부모를 일찍 여의고 어렵게 살았으며, 바라던 미대 입시에는 계속 낙방 했지만, 그는 조국 독일을 위해서 봉사하려고 했지
입대 4년 후, 히틀러는 전투에서 그는 영국의 화학가스 공격을 당하여 시력에 문제가 생기게 돼.
그리고 히틀러는 후방의 병원으로 후송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지.
독일이 결국 패전을 선언하고, 황제는 외국으로 망명해버린 거야.
이 소식을 들은 그는 큰 충격을 입게 되고,
조금씩 나아지던 시력도 다시 나빠지기 시작했어.
그런데 시력을 잃고 앓던 중, 그는 신비한 체험을 하게 돼.
독일 국민의 구원자가 되라는 계시를 들은 것.
아마 신체적인 이유로 어떤 환청이나 환각을 본 거겠지.
하지만 어쨌든 이때를 계기로 히틀러는 초자연적인 현상, 즉 오컬트에 빠지게 돼.
“히틀러는 다른 사람을 통치하고 지배하려고 했지만, 그것이 그들을 위한 일, 그리고 자연의 영원한 법칙을 따르는 일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자신의 지배를 합리화할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외부에서 오는 어떤 힘에 복종하고 싶어했다.
그러한 복종을 통해서 자신의 권력욕을 합리화할 수 있었다.” -'자유로부터의 도피(Escape from Freedom)’, 1941년
히틀러는 사람들을 통치하고 지배하려고 했던 동시에 누군가에게 지배 받고 싶어한 사람이었어.
히틀러가 지배 받고 싶어한 대상은 바로 형이상학적인 진리, 진실 혹은 자연의 법칙 같은 것들이었지.
그래서 그는 기독교인임에도 전통적인 기독교 교리를 거부하고
생애 내내 지속적으로 신비술, 오컬트, 마법사 같은 사람들과 접촉 해왔던 거야.
대표적으로 관계를 맺은 인물은 당대 최고의 마법사로 불렸던 알리스터 크라울리,
히틀러는 오컬트 단체인 동방성당기사단의 독일 지부 정식 멤버였고 당시 총수가 알리스터 크라울리였어
또, 당시 유명했던 체코 출신 마법사 프란츠 바르돈을 나치비밀경찰 SS의 간부로 끌어 들이려고도 했어.
바르돈은 이를 거절했고, 그 대가로 나치가 몰락 하기 전까지 계속 도망 다녀야 하는 신세가 됐지.
이 글은 보는 게이들은 정치 정당이었던 나치가 오컬트에 빠져 있었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사실 나치는 단순한 정당이라기 보다는, 오컬트 집단에 가까운 측면이 있어.
그리고 나치당의 이러한 컬트적 특징은 히틀러 집권 이후에 만들어진 게 아니야.
이미 독일에서는 오래전부터, 반 유대주의 집단에서 신지학이 자리 잡고 있었고 히틀러는 이를 계승 및 발전 시켰을 뿐이지.
대표적으로 당시 유행했던 프리메이슨의 여러 의식이나 제도를 벤치 마킹하여 나치에 도입한 건 나치당의 일부분일 뿐이야.
나치의 문양은 하켄크로이츠(Hakenkreuz)가 대표적인데, 하켄크로이츠는 산스크리트어로는 스와스티카(the Swastika),
스와로스키는 이미 아일랜드부터 일본까지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등등 폭넓게 사용하고 있었어.
하켄 크로이츠는 평화를 상징하는 고대 상징 기호 스와스티카에서 따왔어. 아이러니 하지?
그렇게 된 이유에는 오컬트적인 배경이 자리 잡고 있어.
스와로스키는 러시아의 신지학자 헬레나 페트로브나 블라바츠키(Helena Petrovna Blavatsky)에 의해
유럽의 마법사 단체들. 즉, 컬트교에 변형해서 전파 했는데, 이를 나치가 차용한 거지.
그리고 히틀러는 유명한 신지학자이자 신비술사였던 그레고리 굴디제프(Gregory Ivanovich Gurdijieff)와도 접촉하여 그의 영향을 받기도 했어.
그럼 신지학(theosophy)이란 그럼 뭘까?
간단히 말해 신의 계시를 스스로의 직관으로 인식하는 방법에 대한 것을 말해.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중세의 연금술과 마법과도 맥이 닿지만 본격적인 신지학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아.
19세기 말, 앞서 말한 블라바츠키가 소위 "신지학협회"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 되었으니까 말이야.
원래 신지학의 목적은 개인적 수준에서 보다 나은 정신을 연마하는 수양과 자기 계발의 영역이었지만,
나치는 이들의 도움을 받아 국가주의에 도입한거야.
신지학회의 상징 문양, ‘진실위에 있는 종교는 없다’고 적혀있지만, 나치는 신지학의 다양한 이론을 도입하여 일종의 유사 종교로 만들었어.
이렇게 변형된 신지학에, 오딘(Odin, 게르만 족의 신)을 숭배하는 북유럽의 미신도 추가적으로 결합했지.
그리고 오딘을 숭배하던 마법사이자 신지학자였던 귀도 본 리스트(Guido von List)는 1911년에 "아리안-게르마닉 연구 보고서"라는 제목으로
책을 내게 되는데, 그 책에는 유대인 피가 인류에 해를 가하기 때문에 아리아인과 결혼을 금지 시켜야 한다고 주장해.
그 책은 1935년 통과된 이른바 뉘른베르크 법에 영향을 줬다고 해.
왜냐하면 이 법은, 유태인은 독일인과 결혼할 수 없는 법인데, 결혼 시 강제 노동형에 처해지게 했거든.
또 나치는 오르도 노비 템플리(the Ordo Novi Templi)라는 수도회를 창립한 란츠 본 리벤펠츠(Lanz von Liebenfels)의 극단적 사상도 받아들이게 되면서 더욱
막장으로 치닫게 되는데,
그는 가톨릭 수도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리안 족만이 신의 인간이라고 주장했어.
흑인과 같은 하등 이민족이나 병자는 불임 수술을 통해 단종 시켜야 한다고도 했지.
그리고 이러한 수도사 리벤펠츠의 주장은, 나치 당의 부총통이 된 루돌프 헤스(Rudolph Hess),
SS 친위대를 지휘했던 하인리히 힘러(Heinrich Himmler)에게 큰 감명을 주게 돼.
히틀러 중2병 ㅁㅌㅊ?
2줄요약
1. 히틀러는 오컬트 매니아였고 신비주의자, 마법사를 동경했다.
2. 나치는 원래 오컬트적인 면이 있던 집단 이었다. 히틀러는 그걸 계승, 발전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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